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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August, 2014

한글의 우수성, 위대함 / The best alphabet Hangul (Hangeul)


--- Global Reviews of Hangeul ----
"Hangul is perhaps the most scientific system of writing in general use in any country."
한글은 세계 어떤 나라의 일상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 체계이다.
- Edwin O. Reischauer (1960/ Professor, Harvard University, USA, an historian in East Asian Affairs.)


"Hanguel is the best alphabet that all the languages have dreamed of."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 John Man (Science historian, UK, traveler, documentary director)


"Whether or not it is ultimately the best of all conceivable scripts for Korean, Hangeul must be unquestionably ranked as one of the greatest intellectual achievements of humankind"
한글이 한국인을 위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문자들 가운데 최고이든 아니든 간에, 한글은 의심할 여지없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중 하나로 꼽혀야 한다.
- Geoffrey Sampson (1985/ Professor of Natural Language Computing, University of Sussex, Linguist.)


"I take it for granted that the academic world of linguistics praise and celebrate Hangeul Day as a holiday. So I've been celebrating Hangeul Day every year for more than 20 years."
저는 세계 언어학계가 한글날을 찬양하고 공휴일로 기념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타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해마다 한글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 J.D. McCawley (Professor, University of Chicago, Linguist. He has celebrated Hangeul Day with his fellow linguists for more than 20 years.)


"Hangeul is the most developed phonemic alphabet and also feature characters that are much better than Roman characters."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음소문자이면서도 로마문자보다 한층 차원이 높은 자질문자입니다.
- Hiroyuki Umeda (Former Professor of University of Tokyo, President of Reitaku University, Japan)


"The King's 28 letters have been described by scholars as the world's best alphabet and the most scientific system of writing."
세종이 만든 28자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알파벳이자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기법 체계이다
- Jared Diamond (Physiologist, Medical College of UCLA, Pulitzer Prize winner)


"Differentiated from English and French, Korean is a unique language that can be learned easily. One day is enough to master reading in Korean. Hangeul is a very scientific and convenient alphabet system for communication."
영어, 프랑스어와는 달리 한국어는 쉽게 배울 수 있는 독특한 언어다. 한글 읽기를 깨치는 데 하루면 족하다.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고 의사소통에 편리한 문자다.
- Jean-Marie Gustave Le Clezio (the Nobel Prize winner for literature in 2008)


"King Sejong systematized the phonological theory five centuries earlier than the West which completed its phonological theory in the twentieth century. Hangeul is the best alphabet in the world which combines the traditional philosophy and the science theory."
서양이 20세기에 들어서 완성한 음운이론을 세종대왕은 그보다 5세기나 앞서 체계화했고 한글은 전통 철학과 과학 이론이 결합한 세계 최고의 문자이다.
- Werner Sasse (Professor, University of Hamburg)


"Hangeul is simple, tactic, minute and easy Korean alphabet. The reason why the number of Hangeul learners is increasing in China is not only because the presence of Korea in the Chinese culture has rose but also because its outstanding phonemic structure makes it easier for the Chinese to learn Korean. The scholars of Joseon Dynasty accomplished what Chinese could not by transcribing Chinese sound of Chinese characters with a phonogram 'Hunminjeongeum.' Hangeul put a period to the history of
Chinese language which had been delivered only by characters without sound transcription."
- 李得春 (Professor, Yanbian University)



한글 기념주화

2013

"훈민정음 자음 十자 도형은 원방상형설에 근거해 자음의 근원인 ㅁ을 가운데 놓고,
왼쪽에 혀소리(설음) ㄴㄷㅌㄹ을,
오른쪽에 어금닛소리(아음) ㄱㅋㅂㅍ을 만든다.
위로는 ㅁ의 모서리를 굽혀 ㅇㆁㆆㅎ을,
아래로는 ㅁ을 대각선으로 자른 ㄱ을 왼쪽으로 45도 돌려 ㅅㅿㅈㅊ을 만든다."



2006 효뎨례의

훈민정음 한글 28자중 사라진 4자 - 발음



모음에선ㆍ(아래아) 1개가 없어졌고, 자음에서는 ㆁ(옛이응), ㆆ(여린히읗), ㅿ(반치음) 3개가 없어졌습니다.



'ㆍ'(아래아) 글자가 없어진 것은 그 소리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ㆍ' 소리가 없어진 원인과 과정은 아직도 명확한 해답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시점은 훈민정음 한글 28자중 4자가 사라진 이유참조.)


'ㆍ' : [아래 아]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ㅏ]와는 전혀 다른 소리입니다.
       [ㅏ]와 [ㅗ]의 중간음이라 하지만 [ㅗ+ㅓ]를 이중모음처럼 발음해야
       비슷한 소리가 되며 제주어에 아직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아도얼) > 아들
       (또얼) > 딸
       생이(모엉생이) > 망아지
       실(모어실) > 마을
       슬(고어슬) > 가을
       저 옵서(호언저 옵서) > 어서 오세요

<영어에서 door에서의 모음발음과 유사할것으로 생각됩니다.>




'ㆁ' : 글자만 없어졌고, 소리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현재 쓰이는 'ㅇ'이 훈민정음 창제시의 'ㆁ'과 'ㅇ' 역할을 겸하고 있죠. 원래 글자 모양이 비슷한데다가, 'ㆁ'은 종성 즉 받침에만 쓰이고 'ㅇ'은 초성에만 쓰였는데, 그냥 한 글자로 써도 혼동될 염려가 없습니다.


'ㆁ' : [응]의 첫소리 [ㅇ]은 무음(소리 없음)이고, 받침 [ㅇ]은 [ᅌ]으로 써서 구별하는데
       현대 한글에서는 모두 [ㅇ]으로 쓰고있습니다.




'ㆆ'은 이미 훈민정음 창제 당시부터 소리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유어 단어에는 전혀 쓰이지 않았고, 한자음을 '挹'처럼 중국음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서 훈민정음에 포함된 글자입니다. (1496년 이후에는 쓰지 않고 [ㅇ]으로 발음해도 됩니다.)



'ㅿ' : 소리가 없어졌습니다. 'ㅿ' 소리는 'ㅅ'으로 바뀌거나 'ㅇ'으로 바뀌어 남아있습니다.([ㅅ]과 [ㅇ]의 중간음)


'ㅿ' : 우리말 변화를 참고하세요.
      >슬>마실>마을
      >슬>가실>가을 


표준어 '여우' / 방언 '여수'
표준어 '(병이) 나아' / 방언 '(병이) 나사'

<shi나 sha 발음과 유사할것으로 생각됩니다.>

미국인이 보는 한글 (Dr. Simram)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한글이다. 세계 역사상 전제주의 사회에서 국왕이 일반백성을 위해 문자를 창안한 유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한글은 문자발명의 목적과 대상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그 효용성은 다른 문자와 비교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한자는 표의문자이므로 모든 글자를 다 외워야 하지만 한글은 영어와 마찬가지로 표음문자이므로 배우기가 쉽다. 그래서 한글은 아침글자라고도 불린다. 모든 사람이 단 하루면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을 조합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기 쉽고 24개의 문자로 약 8,000음의 소리를 낼 수 있다. 즉, 소리나는 것은 다 쓸 수 있다.

  일본어는 한자를 모방한 문자이기 때문에 한자 없이 독자적인 문자 수행이 어렵고 또, 한자는 너무나 배우기 어렵다. 한때 중국정부는 은밀히 학자들을 미국에 파견해 한자의 알파벳화를 연구한 적이 있다. 그것은 한자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문맹율이 높고 그것이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한국어로만 말하고 쓰는 완벽한 언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기성세대는 한자를 섞어 사용하고 심지어 일부 교수들은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적 사대주의)

  중국 정부조차 21세기의 미래 언어로서 약점을 인정한 한자에 대해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시대 착오이며 한글의 세계화에 역행하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라틴어는 카톨릭의 공식언어로 사용되었다. 관습상 또는 종교적 권위를 위해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지금 서구에서 라틴어는 사라져 가는 언어일 뿐이다.

  한글은 창제된 지 500년이 되었지만 실제 발전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그 한글이 세계 속에 자부심을 가지고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호주의 대학에서는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해 놓았다.
그리고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아시아나 동부 유럽 국가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 회사 간부들은 한글을 배우고 있다.

  이제 한국 정부도 프랑스 정부가 했던 것처럼 한글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21세기의 언어는 강한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컴퓨터에서 한글의 업무능력은 한자나 일본어에 비해 7배 이상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윈도우 화면을 보고 더블클릭을 하는 순간 한글의 위력은 500년이란 시간의 벽을 넘어 손끝에서 살아 숨쉰다.

  21세기는 정보화 사회다. 즉 정확한 정보의 양과 질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적 목표로 내세우는 것도 문맹의 퇴치이다.
현재 읽고 쓸 줄 아는 미국인은 고작 79%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쉽고 간결한 한글 덕분에 문맹률 0%라는 경이적인 기록에 육박한다.


06 August, 2014

훈민정음 한글 28자중 4자가 사라진 이유



훈민정음 한글 4 글자가 사라진 것은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되어 'ㆍ','ㅿ','ㆁ','ㆆ' 네자를 제외한 결과이다.

이것은 1940년 07월에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1446)가 발견되기 이전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기이다.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으로 [ㆍ]를 폐지
"政格인 現代 京城語를 標準으로 하되
可及的 從來 慣用의 用法을 取하야 發音대로의 書法을 取함.”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ㆍ]를 배제한 조선어사전을 출간

1930년 조선총독부에서 [ㆍ]를 배제한 언문철자법을 제시 (주시경의 표기법을 채택)
"純雜한 朝鮮語와 漢字音과를 不問하고 發音대로 標記함을 原則으로 함.
 但 必要에 應하여 若干의 例外를 設함.”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ㆍ]를 배제한 조선어철자법 통일안 발표
"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으로써 원칙을 삼는다"



조선어학회 조선어철자법 통일안이 발표된 이후 1940년에 훈민정음 해례가 발견되어 훈민정음의 창제원리가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아래아 발음은 지방 사투리에 아직도 많이 사용되고있고 훈민정음의 중요한 모음중의 하나로 장차 되살려야하겠다.


[스크랩] 세종대왕은 왜 하필이면 한글을 28자로 만들었을까


우리는 대부분 한글이 24자인 줄 알고 있습니다. 또 28자 중 없어진 4글자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동양천문학에는 ‘28수(宿) 천문방각도(天文方刻圖’라는 천문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구(天球)를 동 서 남 북으로 나누고 각각 7 별자리씩 배당하여 모두 28 별자리로 구성해 놓은 천문도입니다. 이 별자리들의 이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방 7수 : 각 항 저 방 심 미 기(角亢氐房心尾箕)
북방 7수 : 두 우 여 허 위 실 벽(斗牛女虛危室壁)
서방 7수 : 규 루 위 묘 필 자 삼(圭婁胃昴畢觜參)
북방 7수 : 정 귀 유 성 장 익 진(井鬼柳星張翼軫)

천문도를 보면(*이 글 속에 천문도를 편집해 넣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한문반 여러분들께는 별도로 복사해서 설명드릴 예정입니다.) 안쪽에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를 비롯한 12지를 표시하여 천문과 지리를 함께 나타내고 있지요. 세종 임금은 초성(初聲)을 12지에 배속시켰고, 중성(中聲)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의 10간의 자리에 배속시켰습니다.

보다 많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만 아무튼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설명하는 과정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훈민정음의 첫소리 5행 배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발성(發聲)과 관련해 오행과의 상관관계를 보면, 목구멍(水)을 근원으로 해서 어금니(木), 혀(火), 입술(土)로 나아가서 다시 이(金), 목구멍(水)으로 되돌아옴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상생(相生)의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木 : 어금니소리(牙音) : ㆁ ㄱ ㅋ : 寅 卯 辰
火 : 혓소리(舌音) : ㄴ ㄷ ㄹ ㅌ : 巳 午 未
土 : 입술소리(脣音) : ㅁ ㅂ ㅍ : 28수 중에서 星 房 虛에 배당
金 : 잇소리(齒音) : ㅅ ㅈ ㅊ : 申 酉 戌
水 : 목구멍소리(喉音) : ㅇ ㆆ ㅎ : 亥 子 丑


가운데소리의 위치를 보면,
ㅏ는 갑(甲)의 자리에 배속시켰습니다. 甲의 기운은 28수 가운데에서 心과 尾에서 발하므로 결국 ㅏ는 心과 尾라는 두 별자리 사이에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또 ㅗ는 임(壬)의 자리에 배속시켰는데, 壬의 기운은 28수 중 危와 室에서 발하므로 결국 ㅗ는 危와 室이라는 두 별 자리 사이에 배당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른 글자들도 이러한 원리에 바탕하였기 때문에 모두 28자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지요. 세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세종임금이 훈민정음 창제기간 동안 천문대에 행차한 횟수가 28회였음을 보아도 한글 창제와 천문이론이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한글 28자를 반포한 해도 세종 28년이었습니다.

세종 임금은 재위 16년 되던 해(1434년)에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높이 31자(6.3m), 길이 47자(9.1m), 너비 32자(6.6m)의 관측대를 쌓고, 그곳에 1년 만에 대간의(大簡儀 : 첨성대)를 만들었습니다. 이 간의대에는 혼천의(渾天儀), 혼상(渾象), 규표(圭表)와 방위 지정표인 정방안(正方案) 등을 설치했습니다.

간의대 서쪽에 설치된 거대한 규표는 동표의 높이가 40자(8.3m)이고, 청석으로 만든 圭의 표면에는 장 척 촌 푼의 눈금을 매겨 한낮에 동표의 그림자 길이를 측정하여 24절기를 확정하는 데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원나라 사람 곽수경이 세운 관성대(觀星臺) 이후 동양에서 가장 큰 간의대였다고 합니다. 이 간의대는 세종 20년(1438년)부터 서운관(書雲觀)이 주관하여 매일 밤 5명의 관리가 교대로 관측에 임하게 하여 실질적인 기능을 하였던 것이지요.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서운관은 세종 때 관상감(觀象監)으로 개편하여 천문, 지리, 역수(曆數)에 관한 업무를 맡아본 관아로써 측우기, 물시계, 해시계의 발명도 여기서 이루어졌습니다. 창덕궁 옆과 지금의 현대건설 사옥 터에 걸쳐 있었으나 1907년에 폐지되었지요.

그보다 앞서 이용된 간의대는 옛 휘문고등학교 자리에 있던 관천대, 즉 소간의대였습니다. 세종실록과 증보 문헌비고에 의하면 대간의대는 하늘원 365도 1/4의 눈금이 새겨진 적도환과 그 안쪽에 12시 100각의 눈금이 새겨진 백각환이 있고, 중심에 사유환이 있어 천체의 변화 위치를 관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세종실록 15년조에 의하면 세자(뒷날 문종)가 간의대에 나아가 정초, 이천, 정인지, 김빈 등과 함께 간의와 혼천의의 제도를 강문하고 김빈과 내시 최습에게 명하여 간의대에서 숙직하면서 해와 달과 별들을 참고하여 그 문제점을 파악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숙직 때문에 고생하는 김빈에게는 옷까지 하사하였으며 이로부터 세종과 세자가 매일 간의대에 이르러 그 제도를 의논하여 정했다고 합니다.

또 세종 16년(1434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세종 20년(1438년)에 준공된 흠경각(欽敬閣)은 경복궁 강녕전 곁에 있었습니다. 欽敬이란 함은 『書經』에 나오는 ‘넓은 하늘을 삼가 따르게 하시고,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을 관찰하여 사람들에게 때를 알린다(書經 제1장 虞書 제1편 堯典.에 나오는 글로 요임금이 희씨와 화씨에게 명한 내용이다. 즉 ‘欽若昊天하고 曆象日月星辰하여 敬授人時하시니라’).’는 뜻을 취한 것으로 12지로 상을 만들어 시각을 알렸습니다.

세종 19년에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라는 관측기를 완성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북극 2성이 북신(北辰)에 가까울 뿐 아니라 북신보다 밝아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므로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측후(測候)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세종 15년(1433년)에는 세종이 직접 28수의 거리와 도수, 12궁에 드나드는 별의 도수를 일일이 측후하여 새로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를 작성하여 그것을 돌에 새기고 이순지에게 명하여 천문역법에 대한 책을 편찬케 하였습니다.

세종의 이러한 역법과 천문지식으로 미루어 볼 때 훈민정음 창제에 있어서 역법과 천문 이론이 그 바탕이 되었음은 조금도 낯선 일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한글이 28자로 창제된 이유는 바로 세종 임금께서 천부경의 진리를 회통하고 있는 태극, 음양 오행 이론을 포함한 역법과 동양 천문도의 ‘28수 천문 방각도’의 원리를 적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 내용은 우리가 한글이 왜 과학적이며 세계적인 문자인가를 우리 자신은 물론 외국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초 지식이 되는 것이지요. 이 기본 지식을 알아야만 비로소 한글이 왜 세계에서 그 유래가 없는 우수한 문자가 되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첫 관문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hrist59won

[사단법인 동방문화진흥회 『同人』지 2004년 4월호에 실린 반재원유종회 회장 /(사)한배달 훈민정음 연구소장의 글로 일부 수정 편집했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訓民正音解例 가운데 制字解 전문을 싣겠습니다. 여기에는 음양과 오행론에 의거해 훈민정음을 만들었음을 낱낱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한글은 이미 3~4천년전에 ‘가림토’라는 고한글로 존재했는데 이를 체계화해 다시 세상에 드러낸 것이 세종임금의 훈민정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글과 한문의 制字 원리를 살펴보면 우리 민족에게 이 두 개의 문자는 음양의 상생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민족의 고조선(단군조선) 고대 문자 - 가림토


『환단고기』 - 『단군세기』

고조선 시대 3세 단군이신 가륵(嘉勒)단군 2년(B.C 2,181년)
아직 풍속은 하나 같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틀리며, 형상으로 뜻을 전하는 녹도문자(鹿圖文字)가 있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100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는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신하인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정음 38자(字)를 만들게 하여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였다.”


가림토 문자 38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