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October, 2014

"백성과 하늘을 두려워해야" - 박성무(다산연구소 이사장)


다산이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던 때에 강진의 이웃고을인 영암군수로 근무하던 이종영(李鍾英)이라는 목민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산과 학문논쟁을 벌이면서 가까운 친구 사이로 지내던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라는 학자의 아들이어서 다산과도 아들이나 제자처럼 가깝게 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영암군수의 임무를 마치자 이종영은 함경도의 부령(富寧)이라는 고을의 도호부사(都護府使)로 발령이 나, 그곳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때 다산은 이종영을 송별해주는 글 한 편을 지었으니, 「송부령도호부사이종영부임서」라는 송서(送序)였습니다.

 “목민관이라는 사람은 네 가지를 두려워해야 한다. 아래로는 백성들을 두려워 해야 하고, 위로는 감독관청을 두려워하며, 또 그 위로는 조정(朝廷)을 두려워하고, 또 그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런데도 목민관들이 두려워하는 바는 항상 감독관청과 조정이고 백성들이나 하늘은 두려워 하지 않을 때가 있다." (牧民者有四畏  下畏民上畏臺省  又上而畏朝廷  又上而畏天  然牧之所畏  恒在乎臺省朝廷  而民與天  有時乎勿畏)

 지역을 담당하는 목민관들이 멀리 떨어진 감독관청이나 청와대(조정)는 두려워하면서 가장 가까운 코앞의 백성들이나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하늘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다산의 말씀이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이번 진도의 세월호 사건의 자초지종을 살펴보면, 일을 처리하는 당국자들은 윗사람이나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뿐, 죽어가는 어린 학생들이나 일반 백성들 및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은 것만 같아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자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TV와 신문을 보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하늘을 보기조차 민망하게 여겼건만, 그렇지 않은 당국자들의 조치를 보면서는 치미는 분통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 무서운 줄을 모르는 오늘의 지도자들, 과연 그렇게 사고처리에 무능하고도 하늘을 두려워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삼류국가니, 야만국의 민낯이니, 정부나 국가가 존재나 하느냐고 분노를 터뜨리는 백성들의 목소리는 지도자들의 귀에도 들리기나 하는가요. 옛날 경서(經書)인 『대학』이라는 책에 “근본이 난맥상이면 말단의 일은 해결될 수가 없다.[本亂而末治者 否矣]”라고 성철(聖哲)은 말했습니다. 본말(本末)과 치란(治亂)을 연관하여 본(本이) 어지러운데 말(末)이 제대로 해결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민정신이 본이라면 일을 처리하는 일은 말입니다. 금전만능•권력만능주의에 찌든 국민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최고이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높은 지위에 올라 권력만 잡으면 최고라는 썩어빠진 정신이 바로 근본이 혼란해진 것이며, 재난의 사고처리가 말인데, 재난의 사고처리가 제대로 되어질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백성을 두려워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일이 본(本)이라면, 윗사람의 눈치나 보고 상부만 무서워함이 본란(本亂)입니다. 본란인데 말치(末治)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한 사람의 생명이 백성이고 하늘입니다. 이를 두려워했다면 어떻게 그런 사고에 그토록 무능한 처리가 가능했겠습니까. 모두가 생각부터 뜯어고쳐 근본을 바르게 세우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돈과 권력, 그 마력에서 벗어나는 그런 세상이 그립습니다.

글쓴이 / 박석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고산서원 원장
• 성균관대 석좌교수
• 저서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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