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이다.
‘그 계책을 따르니 교(絞)의 사람들은 초나라의 인부 30명을 사로잡았다. 이튿날에는 교의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나서서 초나라 인부들을 쫓아 산 속으로 달려갔다. 초나라 군사들이 그 북문을 지키고 산 아래에 숨어 있었으므로 교의 사람들은 대패하여 성 아래에서 맹세하고 돌아갔다 從之 絞人獲三十人 明日絞人爭出 驅楚役徒於山中 楚人坐其北門 而覆諸山下 大敗之 爲城下之盟而還.’
위의 글은 초(楚)나라가 교로 쳐들어 남문에 진을 쳤을 때의 일이다. 초나라의 모사인 굴하가 “교의 사람들은 매우 경솔하니 땔나무를 하는 인부에게 호위병을 붙여 내보내어 유인하면 어떤지요?”라고 계책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장군이 수용하여, 초나라의 인부들이 교의 군사들이 보이는 다른 성문 앞의 가까운 산에서 땔감을 하게 하였다. 이것을 보고 교의 군사들이 성문을 열고 나와 먼저 30명의 포로를 잡아가서 공적을 세웠다. 그러자 이튿날에도 초나라의 병사들이 비무장으로 나무하는 것을 보고는, 서로 초나라의 나무꾼을 잡아서 공을 세우려고 앞 다투어 성문을 열고 나왔다. 이 때에 매복했던 초나라의 군사들이 순식간에 성문을 들이쳐 교를 점령하여 항복을 받았다(성 아래에서 맹세하게 했다).
성하지맹(城下之盟)은 교의 사람들이 성 아래까지 진격해 들어온 초나라에게 항복할 것을 맹세하여 초나라에게는 압도적인 승리요, 교에게는 굴욕적인 패배다. 즉, 성 아래에서 맹세한다는 뜻으로, 굴욕적인 항복이나 치욕적인 강화를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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