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위의 조조가 영주의 복양에 진을 치고 있는 여포를 강하게 공격하였으나 여포는 무리한 싸움을 피하고 지구전으로 맞섰다. 이때 서주목사 도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서주를 빼앗기 위해 군사를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참모인 순욱이 이 작전을 말렸다.
“도겸이 죽으면서 서주의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깔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지금은 보리를 걷어 들일 때이므로 서주에서는 주민을 총동원해 보리를 성내로 걷어 들이고 성벽을 다져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견벽청야’이므로 우리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이때 여포가 틈을 노려 공격해 온다면 그때는 우리가 끝장입니다.” 순욱이 조조에게 진언하자, 조조는 서주탈환 작전을 취소하고 여포 공략에 힘을 쏟아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 후대에 청태조 누르하치의 공격에 영원성을 사수하며 청 군대를 패퇴시켰던 원숭환의 견벽청야 작전도 유명하다.
견벽청야(堅壁淸野)는 중국에서 고대로 부터 널리 사용해 온 방어전술의 하나로, 해자를 깊이 파고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성 밖 들판에 있는 모든 곡식을 성내로 거두어 들여서 공격하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으로, 우세한 적에 대해 약자가 쓰는 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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