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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November, 2015

성하지맹 (城下之盟 성 성, 아래 하, 어조사 지, 맹세 맹)

성하지맹 (城下之盟 성 성, 아래 하, 어조사 지, 맹세 맹)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이다.
‘그 계책을 따르니 교(絞)의 사람들은 초나라의 인부 30명을 사로잡았다. 이튿날에는 교의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나서서 초나라 인부들을 쫓아 산 속으로 달려갔다. 초나라 군사들이 그 북문을 지키고 산 아래에 숨어 있었으므로 교의 사람들은 대패하여 성 아래에서 맹세하고 돌아갔다 從之 絞人獲三十人 明日絞人爭出 驅楚役徒於山中 楚人坐其北門 而覆諸山下 大敗之 爲城下之盟而還.’
위의 글은 초(楚)나라가 교로 쳐들어 남문에 진을 쳤을 때의 일이다. 초나라의 모사인 굴하가 “교의 사람들은 매우 경솔하니 땔나무를 하는 인부에게 호위병을 붙여 내보내어 유인하면 어떤지요?”라고 계책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장군이 수용하여, 초나라의 인부들이 교의 군사들이 보이는 다른 성문 앞의 가까운 산에서 땔감을 하게 하였다. 이것을 보고 교의 군사들이 성문을 열고 나와 먼저 30명의 포로를 잡아가서 공적을 세웠다. 그러자 이튿날에도 초나라의 병사들이 비무장으로 나무하는 것을 보고는, 서로 초나라의 나무꾼을 잡아서 공을 세우려고 앞 다투어 성문을 열고 나왔다. 이 때에 매복했던 초나라의 군사들이 순식간에 성문을 들이쳐 교를 점령하여 항복을 받았다(성 아래에서 맹세하게 했다).
성하지맹(城下之盟)은 교의 사람들이 성 아래까지 진격해 들어온 초나라에게 항복할 것을 맹세하여 초나라에게는 압도적인 승리요, 교에게는 굴욕적인 패배다. 즉, 성 아래에서 맹세한다는 뜻으로, 굴욕적인 항복이나 치욕적인 강화를 비유한 말이다.

후발제인 (後發制人 뒤 후, 필 발, 제압할 제, 사람 인)

후발제인 (後發制人 뒤 후, 필 발, 제압할 제, 사람 인)

순자의 의병(議兵)편에 ‘뒤에 출발하여 먼저 도달하는 것이 용병의 중요한 술책이다 後之發 先之至 此用兵之要術也.’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전투에 임하여서는 적이 전열을 정비하여 그 기세가 날카로울 때는 정면으로 상대하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기다렸다가, 적의 전열과 기세가 흐트러진 틈을 타서 공격하여 적을 제압하는 용병술을 말하는 것이다.
전국책(戰國策)의 제책(齊策)편에 ‘천리마라도 오래 달려 피로해진 뒤에는 평범한 말도 그 보다 빨리 달릴 수 있고, 맹분(孟賁)과 같은 뛰어난 용사라도 피곤해져 힘이 빠지고 난 뒤에는 평범한 여자라도 그를 이길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평범한 말이 천리마를 이길 수 있고, 평범한 여자가 맹분 같은 용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후발제인, 곧 상대방이 힘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제압하는 전략을 활용하면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국방 전략은 '남이 나를 침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침범하지 않으며, 남이 나를 침범하면 반드시 나도 남을 침범한다 人不犯我 我不犯人 人若犯我 我必犯人.'는 것이데, 이 역시 후발제인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발제인(後發制人)은 뒤에 손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한다.'라는 뜻으로, 적을 상대할 때 한 걸음 양보하여 그 우열을 살핀 뒤에 약점을 공격함으로써 단번에 적을 제압하는 전략을 말한다.
먼저 공격하여 적을 제압하는 전략인 선발제인(先發制人)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선발제인 (先發制人 먼저 선, 필 발, 제압할 제, 사람 인) or 선즉제인 (先則制人 곧 즉 則)

선발제인 (先發制人 먼저 선, 필 발, 제압할 제, 사람 인) or 선즉제인 (先則制人 곧 즉 則)
사기의 항우본기에 나오는 말이다.

진(秦)나라의 시황제가 죽고 그의 아들인 호해가 즉위한 7월에 진시황 이래 계속되는 폭정에 항거하여 대택향에서 900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궐기한 날품팔이꾼 진승과 오광은 단숨에 기현을 석권하고 하남성의 회양에 입성했다. 이어 이곳에 장초라는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른 진승은 옛 6개국의 귀족들과 그 밖의 반진(反秦) 세력을 규합하여 진나라의 도읍 함양을 향해 진격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강동의 회계태수 은통은 군도(郡都) 오중의 유력자인 항량을 불러 거병을 의논했다.
항량은 진나라 군사에게 패사(敗死)한 옛 초나라의 명장이었던 항연의 아들인데, 고향에서 살인을 하고 조카인 항적(籍 항우의 옛 이름)과 함께 오중으로 도망온 뒤 타고난 통솔력을 십분 발휘하여 곧 오중의 실력자가 된 사람이다.
회계 군수 은통은 항우의 숙부인 항량에게 “강서 지방은 모두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때가 온 것이오. 내가 들으니, 먼저 행동하면 남을 제압하고, 나중에 행동하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 하더이다 吾聞先卽制人, 後卽爲人制人. 내가 군대를 일으키려 하니, 그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으리다.”라고 하였다. 이때 환초는 도망쳐 택중에 있었다.
항량은 “환초가 도망친 곳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내 조카인 항적(항우)뿐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와 항우에게 칼을 들고 문 밖에 대기하라고 일렀다. 그러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은통과 대좌한 뒤 “항적을 불러 환초를 부르라는 명을 받들게 하시지요.”라고 말하니, 은통이 응낙하였다. 항량이 항우를 불러들인 뒤 눈짓을 하며 “쳐라”하고 말하자, 항우가 칼을 뽑아 은통의 머리를 한 칼에 베어 버렸다. 항량은 군수인 은통의 머리를 들고 그의 인수(印綏)를 차고 나왔다. 이에 은통의 부하들이 크게 놀라 우왕좌왕하니, 항우가 베어 죽인 자가 100명에 가까웠다. 그러자 관아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엎드려서는 감히 일어서지 못하였다.
이후 항량은 스스로 회계의 태수가 되어 은통이 거느리던 군사 8천 명을 이끌고 함양으로 진격하던 중에 죽었다.
한서(漢書)의 진승항적전(陳勝項籍傳)에는 항량이 은통에게 “먼저 행동하면 남을 제압하고, 나중에 행동하면 남에게 제압당한다 先發制人, 後發制於人.”라고 말한 것으로 실려 있다.
선즉제인(先則制人)은 상대편이 준비하기 이전에 선수를 쳐 대세를 장악한다는 뜻이며, 여기서 유래하여 선발제인(先發制人) 은 남보다 먼저 일을 착수하면 반드시 남을 앞지를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즉, 선수를 치면 상대편을 제압할 수 있다는 뜻으로, 기선을 제압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상산사세 (常山蛇勢 항상 상, 뫼 산, 뱀 사, 기세 세)

상산사세 (常山蛇勢 항상 상, 뫼 산, 뱀 사, 기세 세)

손자의 구지편(九地篇)에서 다음과 같은 병법을 말하였다.
‘병사를 쓰는데 아홉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가장 마지막 방법을 사지(死地)라 한다. 이는 주저하지 않고 일어나서 싸우면 반드시 살 길이 있으나, 기가 꺾이어 우물쭈물하면 패하고 마는 필사의 지이다. 진퇴양난의 필사적인 상황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판사판으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지혜롭고 유능한 장군의 용병술은 상산에 사는 솔연(率然)이란 머리가 둘인 큰 뱀처럼 행동해야 한다. 솔연은 머리를 치면 꼬리가 덤비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비고,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드는 뱀이다.’
이다.
상산사세(常山蛇勢)는 상산에 사는 뱀인 솔연처럼 적이 습격하면 모두가 서로 원호하는 진법을 사용하는 것을 비유하여, 상산의 뱀 같은 기세라는 뜻으로, 적이 공격하면 조직적이고 긴밀히 연락하여 대처하는 것이나 앞과 끝이 잘 맺어진 완벽한 문장을 비유한 말로 쓰인다.
상산은 산둥성 주청현에서 남쪽으로 약 20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산이다.

배수진 (背水陣 등 배, 물 수, 진칠 진)

배수진 (背水陣 등 배, 물 수, 진칠 진)

배수진의 전략에 대해서 역사에 여러번 나온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한나라 유방이 제위에 오르기 2년 전인 204년, 명장 한신은 유방의 명령에 따라 장이와 함께 위나라를 격파한 여세를 몰아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조나라를 공격하였다. 조나라는 군사 20만 명을 동원하여 한나라가 쳐들어올 길목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조나라의 전략가 이좌거가 재상 진여에게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한나라 군사를 공격하자고 건의하였으나 기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진여에 의해 묵살되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한신은 기병 2,000명을 조나라가 쌓은 성채 바로 뒤편에 매복시켰다. 그러면서 한신은 "우리가 달아나는 것을 보면 조나라 군사는 우리를 좇아올 것이다. 이때 조나라 성안으로 들어가 한나라의 붉은 깃발을 꽂아라." 또한 병사 1만을 먼저 보내에 정경에서 나와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였다. 조나라 군사는 이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信乃使萬人先行 出背水陣 趙軍望見而大笑.
조나라 군사가 성에서 나와 공격하자 한신은 여러 차례 접전을 치르면서 거짓으로 강을 등지고 있던 1만의 아군이 있는 배수의 진까지 후퇴 하였다. 기세를 제압하였다고 판단한 조나라 군사는 한신을 맹렬히 추격하였다. 이때를 노려 한신은 매복시켜 둔 군사에게 조나라의 성채를 점령하도록 하였고, 나머지 군사는 배수진을 친 곳에서 필사적으로 싸웠다.
결사적인 항전에 지친 조나라 군사는 견디지 못하고 성채로 돌아와 보니 이미 한나라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는 한신의 군대에 패하고 말았다.
오랜 원정을 거듭해 조나라보다도 전력이 떨어진 한신은 강을 등지고 군사를 주둔케 한 배수진의 전술을 쓴 것이다. 이는 등 뒤에 강물이 흐르니 싸움에 져서 죽든지 강물에 빠져 죽든지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움에 임하는 것으로, 막다른 길에 몰려 사생결단 할 수밖에 없는 정신 상태로 결전케 하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 파부침선(破釜沈船:항우가 자기의 군사에게 솥을 깨고 배를 침몰시킨 후 강을 등지고 싸우게 함),사량침선(捨糧沈船), 기량침선(棄糧沈船:파부침선과 동일 사건에서 나온 것으로 ‘군량미를 버리고 배를 침몰시킨다.’는 뜻),제하분주(濟河焚舟 : 진(秦)나라 군주 목공은 진(晉)나라를 침공하여 황하를 건너 타고 간 배를 태우고, 진나라의 왕관과 땅을 빼앗고 진나라 도읍의 성곽까지 육박했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이 싸우러 나오지 않아 결국 모진에서 황하를 건너, 전에 효 싸움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거두어 무덤을 쌓고 돌아갔다.)
전략에서 유래한 배수진[背水陣]은 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결사적인 각오로 임한다는 말이다.

금적금왕 (擒賊擒王 사로잡을 금, 도둑 적, 사로잡을 금, 임금 왕)

금적금왕 (擒賊擒王 사로잡을 금, 도둑 적, 사로잡을 금, 임금 왕)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의 시에 이런 내용이 있다.
활을 당기려면 강하게 당기고 挽弓當挽强,
화살을 쏘려면 멀리 쏘아야 한다 用箭當用長.
사람을 쏘려면 먼저 그 말을 쏘고 射人先射馬,
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왕을 잡아라 擒賊先擒王.
적의 장수를 잡으면 적의 전체 병력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싸움에서는 우두머리를 먼저 잡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나라 숙종 때에 장순과 윤자기의 군대가 전투를 하였는데, 장순의 군대가 적을 공격하여 혼란에 빠뜨리고 장순은 윤자기를 죽이려 하였으나 얼굴을 몰랐다. 그래서 장순은 꾀를 내어 군사들에게 볏짚으로 만든 화살을 쏘게 하였는데, 그러자 화살이 볏짚인 것을 보고는 윤자기의 군사들 중에서 많은 이가 장순 군대의 화살이 모두 없어졌다 생각하여, 한꺼번에 윤자기에게 몰려가서 보고하는 것을 보고 윤자기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장순은 즉시 부하 장수에게 시켜 일제히 윤자기를 겨냥하여 진짜 화살을 쏘게 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윤자기의 왼쪽 눈을 맞히면서 대장을 잃게 된 윤자기의 군대를 참패케 했다.
이 처럼 금적금왕(擒賊擒王)은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그 말을 쏜다는 뜻으로 적군을 사로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힘든 일은 미루지 말고 빨리하라는 교훈으로도 쓰인다.

금성탕지 (金城湯池 쇠 금, 재 성, 끓을 탕, 못 지)

금성탕지 (金城湯池 쇠 금, 재 성, 끓을 탕, 못 지)

진시황제가 죽고 2세 황제 호해가 즉위한 뒤 중국은 전국적인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진시황이 죽자 때를 같이하여 천하 각지에서 잠복하고 있던 여섯 강국의 제후와 종실들이 진나라를 타도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들은 제각기 왕이라 칭하고 군현의 책임자를 죽이는 등 기세가 거칠었다.
진나라의 위세는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쳤다. 이때에 무신이라는 이가 조나라의 영토를 평정하고 스스로 무신군이라 칭했다. 그 때에 범양 현령인 서공이 방비를 굳혀 무신군에게 저항할 자세를 보이자 변설가 괴통이라는 모사가 서공을 찾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당신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십여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혹독한 진나라의 법을 시행하여 그 덕분에 몸이 상하거나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로 인해 원망하는 마음이 깊어졌을 게 아닙니까.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진나라의 위세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진나라가 무너졌기 때문에 당신을 죽여 원한을 풀려고 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그는 “방책이 없겠소?”라고 했다.
이에 “나는 당신을 대신하여 무신군을 만나 당신께서 범양을 공격하여 현령이 항복했을 경우, 만약 그를 소홀히 대한다면 각국의 현령들은 손에 쥔 부귀를 놓치지 않으려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입니다. 그들은 준비를 충분히 하여 마치 ‘끓는 물에 둘러싸인 강철성(金城湯池)’처럼 견고하게 수비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범양 현령들을 극진히 대접해 준다면 각국의 현령들은 앞 다투어 항복해 올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무신군도 내 말을 들어줄 것입니다.”
서공과 무신군은 괴통의 진언을 흔쾌이 받아들여 항복한 서공을 후히 대우했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다른 30여 성도 속속 항복해 왔다. 이렇게 하여 범양 사람들은 전란의 소용돌이를 비켜 가게 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금성탕지(金城湯池)란 말은 ‘쇠로 만든 성과 그 성을 둘러싸고 있는 끓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방어시설이 아주 튼튼한 성을 말한다.
금성철벽(金城鐵壁)· 탕지철성(湯池鐵城)· 철옹성(鐵壅城)도 같은 뜻이며, 금탕(金湯)으로 줄여 쓰기도 한다.

교병필패 (驕兵必敗 교만 교, 군사 병, 반드시 필, 패할 패)

교병필패 (驕兵必敗 교만 교, 군사 병, 반드시 필, 패할 패)

전한시대의 선제가 서역의 차사국을 정복하기 위해 정길과 사마희에게 출병을 명하자, 두 사람은 대군을 이끌고 차사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다급한 차사왕은 개노국에 구원병을 요청했지만 개노국이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자 할 수 없이 항복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개노국의 대신들은 후회하고 왕에게 “차사국 땅은 기름지고 우리 땅과 가까우므로 언제 침략을 당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위기국면을 벗어나려면 승리감에 도취해 군기가 해이해진 적의 허점을 노려 기습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라고 진언했다.
이에 개노국왕은 이를 받아들여 즉시 기습공격을 감행해 점령군을 포위하고 곤경에 빠뜨렸다.
위기에 처한 정길은 즉시 선제에게 구원요청의 파발마를 보냈다. 그러나 구원병을 즉시 파병하려는 선제에게 재상이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극구 만류했다.
“교만한 군대가 그 위세를 뽐내는 것은 교병(驕兵)이며 이런 교병은 필패라고 했습니다.” 이에 깊이 깨달은 선제는 자신도 교만했음을 뉘우치고 즉시 증병계획을 취소시켰다 한다.
같은 뜻으로 ‘병교자멸(兵驕者滅 ; 군사에서 교만한 자는 멸한다.)’이 있다.
여기서 유래한 교병필패(驕兵必敗)는강병을 자랑하는 군대나 싸움에 이기고 뽐내는 군사는 반드시 패한다는 말이다.

견벽청야 (堅壁淸野 굳을 견, 벽 벽, 맑을 청, 들 야)

견벽청야 (堅壁淸野 굳을 견, 벽 벽, 맑을 청, 들 야)

삼국지에서 위의 조조가 영주의 복양에 진을 치고 있는 여포를 강하게 공격하였으나 여포는 무리한 싸움을 피하고 지구전으로 맞섰다. 이때 서주목사 도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서주를 빼앗기 위해 군사를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참모인 순욱이 이 작전을 말렸다.
“도겸이 죽으면서 서주의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깔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지금은 보리를 걷어 들일 때이므로 서주에서는 주민을 총동원해 보리를 성내로 걷어 들이고 성벽을 다져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견벽청야’이므로 우리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이때 여포가 틈을 노려 공격해 온다면 그때는 우리가 끝장입니다.” 순욱이 조조에게 진언하자, 조조는 서주탈환 작전을 취소하고 여포 공략에 힘을 쏟아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 후대에 청태조 누르하치의 공격에 영원성을 사수하며 청 군대를 패퇴시켰던 원숭환의 견벽청야 작전도 유명하다.
견벽청야(堅壁淸野)는 중국에서 고대로 부터 널리 사용해 온 방어전술의 하나로, 해자를 깊이 파고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성 밖 들판에 있는 모든 곡식을 성내로 거두어 들여서 공격하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으로, 우세한 적에 대해 약자가 쓰는 전술이다.

29 July, 2015

병법 고사성어 모음

작전과 병법

견벽청야 (堅壁淸野 굳을 견, 벽 벽, 맑을 청, 들 야)
삼국지에서 위의 조조가 영주의 복양에 진을 치고 있는 여포를 강하게 공격하였으나 여포는 무리한 싸움을 피하고 지구전으로 맞섰다. 이때 서주목사 도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서주를 빼앗기 위해 군사를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참모인 순욱이 이 작전을 말렸다.
“도겸이 죽으면서 서주의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깔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지금은 보리를 걷어 들일 때이므로 서주에서는 주민을 총동원해 보리를 성내로 걷어 들이고 성벽을 다져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견벽청야’이므로 우리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이때 여포가 틈을 노려 공격해 온다면 그때는 우리가 끝장입니다.” 순욱이 조조에게 진언하자, 조조는 서주탈환 작전을 취소하고 여포 공략에 힘을 쏟아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 후대에 청태조 누르하치의 공격에 영원성을 사수하며 청 군대를 패퇴시켰던 원숭환의 견벽청야 작전도 유명하다.
견벽청야(堅壁淸野)는 중국에서 고대로 부터 널리 사용해 온 방어전술의 하나로, 해자를 깊이 파고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성 밖 들판에 있는 모든 곡식을 성내로 거두어 들여서 공격하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으로, 우세한 적에 대해 약자가 쓰는 전술이다.

교병필패 (驕兵必敗 교만 교, 군사 병, 반드시 필, 패할 패)
전한시대의 선제가 서역의 차사국을 정복하기 위해 정길과 사마희에게 출병을 명하자, 두 사람은 대군을 이끌고 차사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다급한 차사왕은 개노국에 구원병을 요청했지만 개노국이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자 할 수 없이 항복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개노국의 대신들은 후회하고 왕에게 “차사국 땅은 기름지고 우리 땅과 가까우므로 언제 침략을 당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위기국면을 벗어나려면 승리감에 도취해 군기가 해이해진 적의 허점을 노려 기습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라고 진언했다.
이에 개노국왕은 이를 받아들여 즉시 기습공격을 감행해 점령군을 포위하고 곤경에 빠뜨렸다.
위기에 처한 정길은 즉시 선제에게 구원요청의 파발마를 보냈다. 그러나 구원병을 즉시 파병하려는 선제에게 재상이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극구 만류했다.
“교만한 군대가 그 위세를 뽐내는 것은 교병(驕兵)이며 이런 교병은 필패라고 했습니다.” 이에 깊이 깨달은 선제는 자신도 교만했음을 뉘우치고 즉시 증병계획을 취소시켰다 한다.
같은 뜻으로 ‘병교자멸(兵驕者滅 ; 군사에서 교만한 자는 멸한다.)’이 있다.
여기서 유래한 교병필패(驕兵必敗)는강병을 자랑하는 군대나 싸움에 이기고 뽐내는 군사는 반드시 패한다는 말이다.

금성탕지 (金城湯池 쇠 금, 재 성, 끓을 탕, 못 지)
진시황제가 죽고 2세 황제 호해가 즉위한 뒤 중국은 전국적인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진시황이 죽자 때를 같이하여 천하 각지에서 잠복하고 있던 여섯 강국의 제후와 종실들이 진나라를 타도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들은 제각기 왕이라 칭하고 군현의 책임자를 죽이는 등 기세가 거칠었다.
진나라의 위세는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쳤다. 이때에 무신이라는 이가 조나라의 영토를 평정하고 스스로 무신군이라 칭했다. 그 때에 범양 현령인 서공이 방비를 굳혀 무신군에게 저항할 자세를 보이자 변설가 괴통이라는 모사가 서공을 찾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당신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십여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혹독한 진나라의 법을 시행하여 그 덕분에 몸이 상하거나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로 인해 원망하는 마음이 깊어졌을 게 아닙니까.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진나라의 위세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진나라가 무너졌기 때문에 당신을 죽여 원한을 풀려고 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그는 “방책이 없겠소?”라고 했다.
이에 “나는 당신을 대신하여 무신군을 만나 당신께서 범양을 공격하여 현령이 항복했을 경우, 만약 그를 소홀히 대한다면 각국의 현령들은 손에 쥔 부귀를 놓치지 않으려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입니다. 그들은 준비를 충분히 하여 마치 ‘끓는 물에 둘러싸인 강철성(金城湯池)’처럼 견고하게 수비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범양 현령들을 극진히 대접해 준다면 각국의 현령들은 앞 다투어 항복해 올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무신군도 내 말을 들어줄 것입니다.”
서공과 무신군은 괴통의 진언을 흔쾌이 받아들여 항복한 서공을 후히 대우했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다른 30여 성도 속속 항복해 왔다. 이렇게 하여 범양 사람들은 전란의 소용돌이를 비켜 가게 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금성탕지(金城湯池)란 말은 ‘쇠로 만든 성과 그 성을 둘러싸고 있는 끓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방어시설이 아주 튼튼한 성을 말한다.
금성철벽(金城鐵壁)· 탕지철성(湯池鐵城)· 철옹성(鐵壅城)도 같은 뜻이며, 금탕(金湯)으로 줄여 쓰기도 한다.

금적금왕 (擒賊擒王 사로잡을 금, 도둑 적, 사로잡을 금, 임금 왕)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의 시에 이런 내용이 있다.
활을 당기려면 강하게 당기고 挽弓當挽强,
화살을 쏘려면 멀리 쏘아야 한다 用箭當用長.
사람을 쏘려면 먼저 그 말을 쏘고 射人先射馬,
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왕을 잡아라 擒賊先擒王.
적의 장수를 잡으면 적의 전체 병력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싸움에서는 우두머리를 먼저 잡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나라 숙종 때에 장순과 윤자기의 군대가 전투를 하였는데, 장순의 군대가 적을 공격하여 혼란에 빠뜨리고 장순은 윤자기를 죽이려 하였으나 얼굴을 몰랐다. 그래서 장순은 꾀를 내어 군사들에게 볏짚으로 만든 화살을 쏘게 하였는데, 그러자 화살이 볏짚인 것을 보고는 윤자기의 군사들 중에서 많은 이가 장순 군대의 화살이 모두 없어졌다 생각하여, 한꺼번에 윤자기에게 몰려가서 보고하는 것을 보고 윤자기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장순은 즉시 부하 장수에게 시켜 일제히 윤자기를 겨냥하여 진짜 화살을 쏘게 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윤자기의 왼쪽 눈을 맞히면서 대장을 잃게 된 윤자기의 군대를 참패케 했다.
이 처럼 금적금왕(擒賊擒王)은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그 말을 쏜다는 뜻으로 적군을 사로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힘든 일은 미루지 말고 빨리하라는 교훈으로도 쓰인다.

배수진 (背水陣 등 배, 물 수, 진칠 진)
배수진의 전략에 대해서 역사에 여러번 나온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한나라 유방이 제위에 오르기 2년 전인 204년, 명장 한신은 유방의 명령에 따라 장이와 함께 위나라를 격파한 여세를 몰아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조나라를 공격하였다. 조나라는 군사 20만 명을 동원하여 한나라가 쳐들어올 길목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조나라의 전략가 이좌거가 재상 진여에게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한나라 군사를 공격하자고 건의하였으나 기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진여에 의해 묵살되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한신은 기병 2,000명을 조나라가 쌓은 성채 바로 뒤편에 매복시켰다. 그러면서 한신은 "우리가 달아나는 것을 보면 조나라 군사는 우리를 좇아올 것이다. 이때 조나라 성안으로 들어가 한나라의 붉은 깃발을 꽂아라." 또한 병사 1만을 먼저 보내에 정경에서 나와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였다. 조나라 군사는 이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信乃使萬人先行 出背水陣 趙軍望見而大笑.
조나라 군사가 성에서 나와 공격하자 한신은 여러 차례 접전을 치르면서 거짓으로 강을 등지고 있던 1만의 아군이 있는 배수의 진까지 후퇴 하였다. 기세를 제압하였다고 판단한 조나라 군사는 한신을 맹렬히 추격하였다. 이때를 노려 한신은 매복시켜 둔 군사에게 조나라의 성채를 점령하도록 하였고, 나머지 군사는 배수진을 친 곳에서 필사적으로 싸웠다.
결사적인 항전에 지친 조나라 군사는 견디지 못하고 성채로 돌아와 보니 이미 한나라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는 한신의 군대에 패하고 말았다.
오랜 원정을 거듭해 조나라보다도 전력이 떨어진 한신은 강을 등지고 군사를 주둔케 한 배수진의 전술을 쓴 것이다. 이는 등 뒤에 강물이 흐르니 싸움에 져서 죽든지 강물에 빠져 죽든지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움에 임하는 것으로, 막다른 길에 몰려 사생결단 할 수밖에 없는 정신 상태로 결전케 하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 파부침선(破釜沈船:항우가 자기의 군사에게 솥을 깨고 배를 침몰시킨 후 강을 등지고 싸우게 함),사량침선(捨糧沈船), 기량침선(棄糧沈船:파부침선과 동일 사건에서 나온 것으로 ‘군량미를 버리고 배를 침몰시킨다.’는 뜻),제하분주(濟河焚舟 : 진(秦)나라 군주 목공은 진(晉)나라를 침공하여 황하를 건너 타고 간 배를 태우고, 진나라의 왕관과 땅을 빼앗고 진나라 도읍의 성곽까지 육박했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이 싸우러 나오지 않아 결국 모진에서 황하를 건너, 전에 효 싸움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거두어 무덤을 쌓고 돌아갔다.)
전략에서 유래한 배수진[背水陣]은 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결사적인 각오로 임한다는 말이다.

상산사세 (常山蛇勢 항상 상, 뫼 산, 뱀 사, 기세 세)
손자의 구지편(九地篇)에서 다음과 같은 병법을 말하였다.
‘병사를 쓰는데 아홉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가장 마지막 방법을 사지(死地)라 한다. 이는 주저하지 않고 일어나서 싸우면 반드시 살 길이 있으나, 기가 꺾이어 우물쭈물하면 패하고 마는 필사의 지이다. 진퇴양난의 필사적인 상황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판사판으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지혜롭고 유능한 장군의 용병술은 상산에 사는 솔연(率然)이란 머리가 둘인 큰 뱀처럼 행동해야 한다. 솔연은 머리를 치면 꼬리가 덤비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비고,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드는 뱀이다.’
이다.
상산사세(常山蛇勢)는 상산에 사는 뱀인 솔연처럼 적이 습격하면 모두가 서로 원호하는 진법을 사용하는 것을 비유하여, 상산의 뱀 같은 기세라는 뜻으로, 적이 공격하면 조직적이고 긴밀히 연락하여 대처하는 것이나 앞과 끝이 잘 맺어진 완벽한 문장을 비유한 말로 쓰인다.
상산은 산둥성 주청현에서 남쪽으로 약 20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산이다.

선발제인 (先發制人 먼저 선, 필 발, 제압할 제, 사람 인) or 선즉제인 (先則制人 곧 즉 則)
사기의 항우본기에 나오는 말이다.
진(秦)나라의 시황제가 죽고 그의 아들인 호해가 즉위한 7월에 진시황 이래 계속되는 폭정에 항거하여 대택향에서 900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궐기한 날품팔이꾼 진승과 오광은 단숨에 기현을 석권하고 하남성의 회양에 입성했다. 이어 이곳에 장초라는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른 진승은 옛 6개국의 귀족들과 그 밖의 반진(反秦) 세력을 규합하여 진나라의 도읍 함양을 향해 진격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강동의 회계태수 은통은 군도(郡都) 오중의 유력자인 항량을 불러 거병을 의논했다.
항량은 진나라 군사에게 패사(敗死)한 옛 초나라의 명장이었던 항연의 아들인데, 고향에서 살인을 하고 조카인 항적(籍 항우의 옛 이름)과 함께 오중으로 도망온 뒤 타고난 통솔력을 십분 발휘하여 곧 오중의 실력자가 된 사람이다.
회계 군수 은통은 항우의 숙부인 항량에게 “강서 지방은 모두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때가 온 것이오. 내가 들으니, 먼저 행동하면 남을 제압하고, 나중에 행동하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 하더이다 吾聞先卽制人, 後卽爲人制人. 내가 군대를 일으키려 하니, 그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으리다.”라고 하였다. 이때 환초는 도망쳐 택중에 있었다.
항량은 “환초가 도망친 곳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내 조카인 항적(항우)뿐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와 항우에게 칼을 들고 문 밖에 대기하라고 일렀다. 그러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은통과 대좌한 뒤 “항적을 불러 환초를 부르라는 명을 받들게 하시지요.”라고 말하니, 은통이 응낙하였다. 항량이 항우를 불러들인 뒤 눈짓을 하며 “쳐라”하고 말하자, 항우가 칼을 뽑아 은통의 머리를 한 칼에 베어 버렸다. 항량은 군수인 은통의 머리를 들고 그의 인수(印綏)를 차고 나왔다. 이에 은통의 부하들이 크게 놀라 우왕좌왕하니, 항우가 베어 죽인 자가 100명에 가까웠다. 그러자 관아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엎드려서는 감히 일어서지 못하였다.
이후 항량은 스스로 회계의 태수가 되어 은통이 거느리던 군사 8천 명을 이끌고 함양으로 진격하던 중에 죽었다.
한서(漢書)의 진승항적전(陳勝項籍傳)에는 항량이 은통에게 “먼저 행동하면 남을 제압하고, 나중에 행동하면 남에게 제압당한다 先發制人, 後發制於人.”라고 말한 것으로 실려 있다.
선즉제인(先則制人)은 상대편이 준비하기 이전에 선수를 쳐 대세를 장악한다는 뜻이며, 여기서 유래하여 선발제인(先發制人) 은 남보다 먼저 일을 착수하면 반드시 남을 앞지를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즉, 선수를 치면 상대편을 제압할 수 있다는 뜻으로, 기선을 제압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 후발제인 (後發制人 뒤 후, 필 발, 제압할 제, 사람 인)
순자의 의병(議兵)편에 ‘뒤에 출발하여 먼저 도달하는 것이 용병의 중요한 술책이다 後之發 先之至 此用兵之要術也.’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전투에 임하여서는 적이 전열을 정비하여 그 기세가 날카로울 때는 정면으로 상대하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기다렸다가, 적의 전열과 기세가 흐트러진 틈을 타서 공격하여 적을 제압하는 용병술을 말하는 것이다.
전국책(戰國策)의 제책(齊策)편에 ‘천리마라도 오래 달려 피로해진 뒤에는 평범한 말도 그 보다 빨리 달릴 수 있고, 맹분(孟賁)과 같은 뛰어난 용사라도 피곤해져 힘이 빠지고 난 뒤에는 평범한 여자라도 그를 이길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평범한 말이 천리마를 이길 수 있고, 평범한 여자가 맹분 같은 용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후발제인, 곧 상대방이 힘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제압하는 전략을 활용하면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국방 전략은 '남이 나를 침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침범하지 않으며, 남이 나를 침범하면 반드시 나도 남을 침범한다 人不犯我 我不犯人 人若犯我 我必犯人.'는 것이데, 이 역시 후발제인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발제인(後發制人)은 뒤에 손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한다.'라는 뜻으로, 적을 상대할 때 한 걸음 양보하여 그 우열을 살핀 뒤에 약점을 공격함으로써 단번에 적을 제압하는 전략을 말한다.
먼저 공격하여 적을 제압하는 전략인 선발제인(先發制人)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성하지맹 (城下之盟 성 성, 아래 하, 어조사 지, 맹세 맹)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이다.
‘그 계책을 따르니 교(絞)의 사람들은 초나라의 인부 30명을 사로잡았다. 이튿날에는 교의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나서서 초나라 인부들을 쫓아 산 속으로 달려갔다. 초나라 군사들이 그 북문을 지키고 산 아래에 숨어 있었으므로 교의 사람들은 대패하여 성 아래에서 맹세하고 돌아갔다 從之 絞人獲三十人 明日絞人爭出 驅楚役徒於山中 楚人坐其北門 而覆諸山下 大敗之 爲城下之盟而還.’
위의 글은 초(楚)나라가 교로 쳐들어 남문에 진을 쳤을 때의 일이다. 초나라의 모사인 굴하가 “교의 사람들은 매우 경솔하니 땔나무를 하는 인부에게 호위병을 붙여 내보내어 유인하면 어떤지요?”라고 계책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장군이 수용하여, 초나라의 인부들이 교의 군사들이 보이는 다른 성문 앞의 가까운 산에서 땔감을 하게 하였다. 이것을 보고 교의 군사들이 성문을 열고 나와 먼저 30명의 포로를 잡아가서 공적을 세웠다. 그러자 이튿날에도 초나라의 병사들이 비무장으로 나무하는 것을 보고는, 서로 초나라의 나무꾼을 잡아서 공을 세우려고 앞 다투어 성문을 열고 나왔다. 이 때에 매복했던 초나라의 군사들이 순식간에 성문을 들이쳐 교를 점령하여 항복을 받았다(성 아래에서 맹세하게 했다).
성하지맹(城下之盟)은 교의 사람들이 성 아래까지 진격해 들어온 초나라에게 항복할 것을 맹세하여 초나라에게는 압도적인 승리요, 교에게는 굴욕적인 패배다. 즉, 성 아래에서 맹세한다는 뜻으로, 굴욕적인 항복이나 치욕적인 강화를 비유한 말이다.

손방투지 (孫龐鬪智 손자 손, 어지러울 방, 싸울 투, 지혜 지)
손빈과 방연은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에서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위나라 혜왕에게 기용되어 부근의 약소국가들을 정벌하는 공을 세웠다.
제나라 사람인 손빈은 그 재능이 방연보다 한 수 위였다. 혜왕도 손빈의 명성을 듣고 있었으므로, 동문수학한 방연에게 그를 초빙하도록 하였다. 방연은 손빈의 재능을 시기하여, 혜왕에게 손빈이 제나라와 밀통한다고 모함하였다. 이에 손빈은 슬개골을 잘리는 형벌을 당하고, 얼굴에는 죄수임을 나타내는 문자가 새겨졌다. 얼마 뒤 손빈은 위나라를 방문한 제나라 사신들에게 구출되어 제나라로 돌아왔다. 제나라의 대장 전기는 위왕에게 손빈을 천거하였다.
후에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위왕은 전기와 손빈을 각각 대장과 군사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였다. 손빈은 조나라를 공격하는 데 병력을 투입하여 방비가 허술해진 위나라의 수도 대량을 공격하였다. 그리고는 방연이 조나라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위위구조(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다)’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그 후 위나라는 다시 한나라를 침공하였다. 제나라 선왕은 한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고 이 때도 전기와 손빈을 파견하였다. 손빈은 이번에도 한나라를 구하러 가지 않고 위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위나라가 손빈이 이끄는 제나라의 군대 쪽으로 대군을 보내었는데, 제나라 군대는 이미 물러간 뒤였다.
위나라의 장수 방연이 제나라의 군대가 머물렀던 곳을 살펴보니 병사들이 솥에 밥을 지어 먹은 흔적이 족히 10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튿날에는 솥의 숫자가 5만 명으로 줄어 있었고, 그 다음 날에는 2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이걸 본 방연은 제나라 병사들이 탈영하여 줄어든 것이라 믿고, 이 틈에 제나라를 섬멸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마릉에 이르러 방연이 병사들을 독려하여 진군하는데, 앞에 나무가 쓰러져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방연이 살펴보니 거기에는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방연은 즉시 후퇴하려 하였으나 사방에서 제나라 군대가 공격해 왔다. 제나라 군대의 솥 숫자가 줄어든 것은 방연이 경계심을 풀고 공격해 오도록 유도한 손빈의 책략이었던 것이다. 방연은 퇴로가 끊기자 자결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한 손방투지(孫龐鬪智)는 ‘손빈과 방연이 지혜를 다투다.’라는 뜻으로, 비슷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계책을 써서 기량을 겨루거나,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원수가 되어 생사를 다투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안도 (安堵 편안할 안, 담 도)
전국시대 후기 연나라 소왕은 명재상 악의를 앞세워, 5개 제후국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쳤다.
악의는 5년 동안 제나라의 70여 성을 함락했지만 즉묵과 거, 2개의 성만 항복하지 않았다.
제나라 민왕은 거성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즉묵 성을 지키는 전단은 병졸들과 함께 궂은일도 기꺼이 하면서 자기 식구 모두를 군에 편입시켜 군대의 사기를 높이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연나라 소왕이 죽고 혜왕이 즉위하자 전단은 첩자를 보내어 혜왕과 악의를 이간하는 한편 연나라 장군들에게 돈을 보내면서 거짓 항복문서도 함께 보냈다.
“즉묵 성이 함락된다면 우리 가족을 포로로 잡거나 약탈하지 마시고, 집안에서 편안히 살 수 있도록(安堵)해 주십시오.”라고 하여 연나라 군사가 방심하고 있을 때, 전단은 쇠뿔에 칼을 묶고 꼬리에 불을 붙여 어둠을 틈타 적진으로 놓아 보내는 저 유명한 화우지계(火牛之計)를 써서 연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마침내 빼앗긴 70여 성은 모두 수복되고 피란지에서 목숨을 잃은 민왕의 대를 이은 양왕도 거에서 도읍인 임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서 유래한 안도(安堵)는 ‘담 안(집안)에서 편안히 살다.’라는 말로서, 어떤 어렵고 중대한 일의 한 고비를 넘기고 마음을 놓고 산다는 뜻으로 쓰인다.

애병필승 (哀兵必勝 슬플 애, 병사 병, 반드시 필, 이길 승)
노자도덕경 69장에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이 없다.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자치하면 나의 보배를 잃게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거병하여 서로 항거할 때는 슬퍼하는 자가 이긴다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라고 하였다.
상대방으로부터 핍박을 당한 쪽은 마음속에 비분의 감정을 품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적을 눌러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애병필승은 전투중인 양쪽 군대의 전력이 대등할 때는 비분에 차 있는 쪽의 군대가 승리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며, 적으로부터 수모를 받아 분기하여 저항하는 군대가 반드시 승리를 쟁취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를 병법에 응용하여 아군 병사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싸움에 임하게 함으로써 승리를 도모하는 계책을 애병지계(哀兵之計)라고 한다.
중국의 대표적 병법서인 손자 작전편에도 “적을 죽이려는 자는 부하들로 하여금 적개심을 품게 하라 殺敵者 怒也.”라는 말이 있다.
애병필승(哀兵必勝)은 ‘비분에 차 있는 병사들이 반드시 싸움에서 승리한다.’라는 말로, 전쟁 중인 양방의 전력이 대등할 때는 비분에 차 있는 쪽이 전력을 다해 싸움으로써 반드시 승리를 쟁취한다는 뜻이다. 반의어는 교병필패(驕兵必敗:교만한 병사는 반드시 패배한다)이다.

여병말마 (厲兵秣馬 숫돌 려, 병장기 병, 말먹이 말, 말 마)
이 고사는 좌씨전의 희공(僖公) 33년 조에 실려 있다.
춘추시대의 진(秦)나라 목공은 진(晉)나라 문공과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정나라 문공은 대부 촉지무를 파견하여 진목공을 설득하였고, 이에 진나라는 대부 기자를 비롯한 일부만 정나라에 남겨두고 철수하였다.
2년 뒤에 기자는 진목공에게 정나라의 상황을 보고하는 밀서를 보내, 정나라의 방비가 허술하며 자신들이 북쪽 성문을 장악하였으니 기습공격을 펼친다면 정나라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렸다. 진목공은 절호의 기회라 여기며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로 진군하였다.
진나라 군대가 정나라 근처에 이르렀을 때, 현고라는 정나라 상인이 이를 목격하였다. 현고는 짐승 가죽 4장과 소 12마리를 끌고 가서 진나라 군대의 노고를 위로하는 한편, 급히 사람을 보내어 정목공(문공의 아들로 아버지를 이어 즉위함)에게 진나라의 진군 소식을 알렸다. 정목공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하여 기자 등이 묵고 있는 숙사로 사람을 보내 동태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그랬더니 그들은 수레에 실을 짐을 묶어 놓고, 병장기를 갈고 말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었다 則束載厲兵秣馬矣. 이런 보고를 들은 정목공은 그들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정목공은 황무자를 기자에게 보내 정나라에서 진나라의 기습 계획을 이미 알고 대비한 것처럼 꾸미게 하였다. 기자 등은 이에 속아 넘어가 계획이 탄로 났다고 여기고는 정나라에서 도망쳤다.
진(秦)나라 군대는 공격을 포기하고 회군하는 길에 진(晉)나라의 기습을 받아 전멸 당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여병말마(厲兵秣馬)는 ‘병장기를 날카롭게 갈고 말을 먹여 살찌우다.’라는 뜻으로, 전쟁 준비를 다 갖추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우직지계 (迂直之計 돌아갈 우, 곧을 직, 의 지, 꾀 계)
손자(孫子) 군쟁편(軍爭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가까운 길을 먼 길인 듯 가는 방법을 적보다 먼저 아는 자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先知迂直之計者勝. 이것이야말로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원칙이다 此軍爭之法也."
손자는 이 말에 덧붙여 설명하기를 "군쟁(軍爭)의 어려움은 돌아가는 길을 직행하는 길인 듯이 가고 불리한 우환을 이로움으로 만드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 길은 돌기도 하고, 미끼를 던져 적을 유인하기도 하고, 상대방보다 늦게 출발하고서도 먼저 도달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우직지계를 아는 사람이다."
병법의 핵심은 상대의 허점을 알아내고 교란시켜서 적을 오판에 빠뜨리는 것이다. 전쟁사에 남은 수많은 명 전투는 병력으로나 전세로나 월등 열세에 빠진 쪽이 어떻게 해서 이겼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힘과 지혜의 싸움인 전쟁에서 우직지계는 상식적인 사고를 뒤집어 생각해보는 것이 병법의 기초임을 말한다. 여기서 유래한 우직지계(迂直之計)는 가까운 길을 곧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병법의 지혜를 일컫는다.

이도살삼사 (二桃殺三士 두 이, 복숭아 도, 죽일 살, 석 삼, 무사 사)
안자춘추(晏子春秋) 간(諫) 하(下)의 이야기다.
제(齊)나라 경공에게는 신변을 호위하는 장수로 공손접, 고야자, 전개강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힘과 공을 빌어, 법과 위계질서를 무시했다. 참다못한 재상 안영이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어느 날 안영이 만찬석상에서 복숭아 두 개를 내어 와 경공에게 바치며, “이 복숭아를 가장 공로가 큰 신하에게 상으로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먼저 공손접이 나서서 “사냥 때, 폐하께 달려드는 호랑이를 내가 맨손으로 잡았다.”하고는 복숭아를 하나 가졌다. 전개강 역시 “나는 매복을 사용하여 두 번이나 적을 무찔렀다.”하고는 남은 복숭아를 가졌다. 당황한 고야자가 “폐하를 모시고 황허강을 건널 때, 폐하 수레의 왼쪽 말이 중류로 도망쳤다. 내가 강으로 들어가 백 걸음 동안 흐름을 거스른 다음 흐름을 좇아 90리를 가서 말을 죽였다. 그런 다음 왼손으로 말의 엉덩이를 붙잡고 오른손으로 말의 목을 들어 언덕으로 올라왔다.”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공손접과 전개강이 이 말을 듣고 “우리의 공훈은 그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복숭아를 탐한 것은 우리의 탐욕 때문이다.”하고는 스스로 목을 베었다.
고야자도 “두 사람이 죽었는데 나 혼자 사는 것은 인(仁)이 아니다. 사람이 명성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듣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의롭지 못하다.”하고 칼을 뽑아 자기의 목을 찔렀다.
고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제갈 량의 양보음(梁甫吟)이라는 고체시(古體詩)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하루아침에 참언을 입어(一朝被讒言), 두 복숭아가 세 장사를 죽였다(二桃殺三士).’
이백 또한 동명의 시를 지어 이 고사를 더욱 유명하게 하였다.
‘제나라의 재상은 힘이 남산을 갈아엎는 세 명의 장사를 죽이는데, 두 개의 복숭아를 사용하였다 力排南山三壯士 齊相殺之費二桃.’
안영의 생각은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유사하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 집단의 질서를 흩트리는 자, 장차 자신을 위해할 염려가 있는 자 등에게는 인정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여기서 유래한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는 복숭아 두 개로 무사 세 명을 죽인다는 뜻으로, 교묘한 책략으로 상대를 자멸하게 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우위직 (以迂爲直 써 이, 굽을 우, 할 위, 곧을 직)
손자의 군쟁(軍爭)편에 “무릇 용병의 방법은 장수가 군주의 명령을 받아 군대를 편성하고 적과 대치하여 주둔한다. 적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하여 경쟁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는데, 이는 우회함으로써 곧장 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고, 아군의 불리한 여건을 이로움이 되도록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以迂爲直 以患爲利. 그러므로 그 길을 우회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자신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하고, 적보다 나중에 출발하여 먼저 도달하는 것을 우직(迂直)의 전략을 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아군이 멀리 우회하는 것처럼 적을 속임으로써 적이 기동을 지체하도록 유인하면 적보다 늦게 출동하여도 먼저 도착하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이것이 우회함으로써 곧장 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우회작전의 예로는 암도진창(暗渡陳倉)의 고사(故事)에서 한신(韓信)이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여 초나라 장수 장한(章邯)을 속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군을 이끌고 우회하여 진창을 점령하고 관중을 함락시킨 일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유래한 이우위직(以迂爲直)은 ‘굽은 것으로써 바른 것이 되게 하다.’라는 뜻으로, 우회함으로써 곧장 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는 전략을 말한다.

이정대화 (以靜待譁 써 이, 고요할 정, 기다릴 대, 시끄러울 화)
손자의 군쟁(軍爭)편에 ‘아군의 태세를 잘 정비하여 적이 혼란스러워지기를 기다리고, 아군의 태세를 침착하게 가다듬어 적이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리니, 이것이 심리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以治待亂 以靜待譁 此治心者也.’라고 하였다.
싸워서 이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어 시끄럽지 않다. 반면에 마음이 불안하면 조급해지고, 조급해지면 시끄럽고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아군의 태세를 침착하게 가다듬고 나서 적이 조급해질 때를 기다려 그 불안정한 약점을 공격하면 승리를 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유래한 이정대화(以靜待譁)는 ‘고요함으로써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린다.’라는 뜻으로, 아군의 태세를 침착하게 가다듬고 나서 들뜨고 조급해진 적을 상대하라는 전략을 말한다.

이치대란 (以治待亂 써 이, 다스릴 치, 기다릴 대, 어지러울 란)
손자의 군쟁(軍爭) 편은 적과 싸울 때의 용병술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전투태세를 잘 갖추고 있는 적군과는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병사들의 사기는 아침에는 날카롭고, 낮에는 나태해지며, 저녁에는 돌아갈 생각만 한다. 그러므로 용병을 잘 하는 자는 상대의 날카로운 기세를 피하고 적이 나태해질 때 공격하니, 이것이 사기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아군의 태세를 잘 정비하여 적이 혼란스러워지기를 기다리고, 아군의 태세를 침착하게 가다듬어 적이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리니, 이것이 심리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以治待亂, 以靜待譁, 此治心者也.’
가까운 곳에서 먼 길을 오는 적을 기다리고, 편안한 자세로 적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며, 배불리 먹고 나서 적이 배고프기를 기다리니, 이것이 힘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적의 깃발이 질서정연하면 이를 맞이하여 싸우지 않으며, 적진의 기세가 당당할 때는 공격하지 않으니, 이것이 변화에 잘 대처하는 방법이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하였으나, 싸우게 된 경우에는 지략(智略)을 써서 아군의 병력을 손상시키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이 온전한 승리라고 하였다. 아군의 전력을 잘 정비하고 나서 상대가 나태해지기를 기다려 공격하는 것도 그러한 용병술 가운데 하나이다.
이치대란은 뒷 구절의 이정대화(以靜待譁)와 상응하여 적이 혼란스러워지고 동요하기를 기다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적을 제압하는 용병의 방법이며, 또한 일상생활에서 경쟁자에 대처하는 방법으로도 통용된다.
여기서 유래한 이치대란(以治待亂)은 ‘자신을 다스린 뒤에 상대가 어지러워지기를 기다린다.’라는 뜻으로, 아군의 태세를 잘 정비하고 나서 적군이 혼란스러워지기를 기다려 대적한다는 말이다.

이호경식계 (二虎競食計 두 이, 범 호, 다툴 경, 먹을 꾀 계)
사기의 장의열전(張儀列傳)에 변장자가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가 나온다.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려고 할 때에 그가 묵고 있던 여관에서 심부름하는 아이가 말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두 호랑이가 소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고기를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반드시 서로 다툴 것이고, 다투게 되면 반드시 싸울 것이며, 싸우게 되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이니, 다친 놈을 찌르면 단번에 두 마리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변장자가 그 말을 따라 기다리니, 과연 두 마리 호랑이가 싸워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었다. 변장자는 다친 놈을 칼로 찔러 단번에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삼국지연의에서도 이 계책이 언급된다.
여포가 서주에 주둔한 유비에게 몸을 의탁하자, 조조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자신을 공격해올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에 순욱은 무력을 쓰기보다는 유비와 여포가 서로 싸우게 하는 계책을 써야 한다고 말하였다.
"황제에게 청하여 유비를 서주목으로 임명하게 하고, 여포를 제거하라는 밀서를 내리십시오. 유비가 여포를 제거하면 유비는 한쪽 팔을 잃는 셈이 되어 처치하기 쉬워질 것입니다. 유비가 여포를 제거하지 못하면 여포가 반드시 유비를 죽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 마리 호랑이가 먹이를 두고 다투게 만드는 계책입니다(此乃二虎競食之計也)." 그러나 유비는 이 계책에 말려들지 않고 오히려 밀서를 여포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볼 때, 이호경식계는 상대방의 사이를 이간하는 이간계(離間計)에 속하며,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計)와도 비슷하다.
여기서 유래한 이호경식계(二虎競食計)는 ‘두 마리 호랑이가 먹이를 다투도록 만드는 계책’ 이라는 뜻으로, 대적하는 상대의 갈등을 조장하여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계책을 말한다.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라고도 한다.

일고작기 (一鼓作氣 한 일, 북 고, 지을 작, 기운 기)
좌씨전의 '장공 10년' 조에서 유래되었다.
춘추시대에 제(齊)나라가 맹약을 어기고 노(魯)나라를 공격하였다. 노나라 장공은 조귀와 전차를 같이 타고 장작이라는 곳에서 제나라 군대와 교전하였다.
장공이 북을 두드려 진격할 채비를 하자 조귀는 아직 이르다고 말렸다.
제나라 군대가 북을 세 번 두드리고 나서야 조귀는 “이제 공격해도 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노나라 군대가 북을 한 번 두드리자 병사들이 사기가 올라 모두들 용감하게 전진하였다. 제나라 군대는 그 기세를 당해내지 못하고 대패하여 도주하였다. 장공은 승세를 틈타 적을 추격하려 하였으나 조귀가 다시 말렸다. 조귀는 전차에서 내려 제나라 군대의 전차가 지나간 바퀴자국을 자세히 살펴보고, 다시 전차에 올라 멀리 제나라 군대가 도주하는 상황을 살펴보고 나서야 “이제 추격해도 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노나라 군대는 제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승리하였다. 장공이 조귀에게 그렇게 한 까닭을 묻자, 조귀는 이렇게 말하였다.
“무릇 전쟁이란 사기(士氣)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사기는 북을 처음 울릴 때 가장 왕성하고, 두 번째 울릴 때면 조금 쇠퇴해지며, 세 번째 울릴 때면 이미 사그러들고 맙니다. 적군은 북을 세 번 두드려 사기가 사그러들고 아군은 첫 번째 북을 울려 사기가 왕성하였으므로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夫戰, 勇氣也. 一鼓作氣, 再而衰, 三而竭. 彼竭我盈, 故克之. 그러나 제나라와 같은 대국은 그 용병술을 예측하기 어려워 혹시 매복이 있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살펴보았는데, 도망친 바퀴자국이 어지럽고 깃발도 거꾸러뜨린 채 도주하는 모습을 보고 패주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되어 추격해도 좋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유래한 일고작기(一鼓作氣)는 ‘한 번 북을 두드려 사기를 진작시키다.’라는 뜻으로, 전장에서 첫 북소리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처럼 처음에 기세를 올려 단숨에 일을 처리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좌향기리 (坐享其利 앉을 좌, 누릴 향, 그 기, 이로울 리)
중국의 병법서인 병경백자(兵經百字)의 연부(衍部)편에 ‘내가 조치하기 어려운 일은 남의 손을 빌릴 것이니, 반드시 몸소 행하지 않아도 앉아서 그 이익을 누릴 수 있다 己所難措 假手於人 不必親行 坐享其利.’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병력이나 물자를 동원하지 않고 적을 이용하여 힘들이지 않고 군사적 이득을 취한다는 뜻이다. 손자의 작전편에도 ‘군대를 잘 운용하는 자는 한 사람에게 두 번 군역을 징집하지 않고, 군량미를 세 번 실어 보급하지 않으며, 필요한 것은 적국에서 취하여 이용하고 적국의 식량을 군량미로 조달하므로 군대의 식량이 풍족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적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다는 의미는 같다.
좌향기리(坐享其利)는 ‘앉아서 이익을 누린다.’라는 뜻으로,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상대방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병법의 계책으로, 적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차도살인(借刀殺人: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임)의 계책과 비슷하며,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취한다는 점에는 어부지리(漁父之利:둘이 다투고 있는 사이에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취함)와 의미가 비슷하다.

지피지기백전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 알 지, 저 피, 알 지, 몸. 자기 기, 일백 백, 싸울 전, 아닐 불, 위태할 태)
손자(孫子) 모공편(謀攻篇)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퇴 知彼知己 百戰不殆 :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
부지피이지기 일승일패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 적의 실정을 모른 채 아군의 전력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패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 :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전력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
손자는 전국시대에 편찬된 병가의 서적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당연히 전쟁에 이기기 위한 전술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손자는, 싸움터에서 군대의 세력을 전개시켜서 피로 물든 전투를 한 뒤에 적을 이기는 것은 전술가로서 하급[下之下]이라고 말한다. 즉 싸우지 않고서 이기는 것, 이것이 손자가 이상으로 하는 전략이다.
따라서 손자는 시계편(始計篇)에는 무모한 전쟁에 대한 경계를 이야기하였으며, 작전편(作戰篇)에는 전쟁이 국가와 백성들에게 주는 막대한 손실과 함께 부득이하게 전쟁을 할 경우 되도록 빨리 끝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모공편은 적군에게 이기는 방법, 즉 여러 가지 승리의 방법이 적혀 있다. 그 중 최선의 승리는 아군의 피해가 전혀 없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략으로 적군의 전의(戰意)를 꺾어야 할 것을 지적하였다.
손자는 결코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것을 상책으로 삼지 않았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상의 상책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서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상의 상책이다. 그러므로 으뜸가는 군대는 계략으로 적을 친다. 그 다음가는 군대는 서로 친다. 또 그 다음가는 군대는 적병을 치며, 그 아래의 군대는 성을 공격한다 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故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으뜸가는 군대는 계략으로 적을 친다.’는 것은, 최상의 전쟁 방법을 말한다. 이것은 계략으로,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서로를 친다.’는 것은 차선책으로서, 상대편의 동맹국으로 하여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즉, 상대편을 고립시켜 원조가 없는 상황으로 모는 방법이다.
그 다음이 싸움터에서 적과 대결하는 일이다. 그러나 상대편에게도 전략과 계략이 있으므로, 항상 최선의 방법을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상의 상책인 사람이 아닌 이상 백전백승의 길만을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아(彼我)를 잘 비교 검토한 다음에 전투에 임할 것을 권하고 있다. 여기서 지피지기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간첩(間諜)의 이용이다.
중국 역사상 누구보다도 먼저 간첩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가 바로 손자다.
손자가 말한 대로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지피를 하여야 하는데, 이 지피는 적에 대한 정보가 필수다. 따라서 상대편에 대한 정보의 입수를 위해서는 간첩의 활용이 우선이다.
용간편(用間篇)에는 이 간첩에 대한 이야기가 전문적으로 다루어져 있다.
손자가 말하는 간첩에는 향간(鄕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의 다섯 종류가 있다.
향간은 상대국의 주민을 고용하는 것이며, 내간은 관리를 고용하는 것이다. 현대의 고정 간첩과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반간은 일종의 이중간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정보를 흘리기 위해 이용한다.
사간은 반간보다 조금 더 복잡한 것으로 배반할 가능성이 있는 간첩이다. 그에게 거짓 정보를 주어 상대국에 보고하도록 하며, 이로 인해 적의 손에 처형되도록 한다.
끝으로 생간은 상대국의 정보를 탐지한 뒤에 살아 돌아와 상세하게 보고할 수 있는 간첩을 말한다. 제일 중요한 간첩이다.
여기서 유래한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는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으로, 상대편과 나의 약점과 강점을 충분히 알고 승산이 있을 때 싸움에 임하면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이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를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 ; 백 번을 싸워 백번을 이긴다)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 구절의 가장 핵심은 안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내가 적 보다 모든 면에서(군대의 세력과 사기, 전략과 전략을 베푸는 모사 등)약하고 그 사실을 정확히 안다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거나 피해야 위태롭지 않다는, 곧 살길이란 뜻이다.

타초경사 (打草驚蛇 칠 타, 풀 초, 놀랄 경, 뱀 사)
다음은 중국 당나라 단성식의 수필집인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나라 때 지방의 한 탐관오리 현령이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거둬들여 사복을 채우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일부러 현령에게 그 부하들의 부정부패 사실을 일일이 열거해 고발장을 올렸다.
그러자 고발장을 읽어보던 현령은 깜짝 놀라며 여수타초 오이경사(汝雖打草 吾已驚蛇)라는 글귀를 적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즉 너희들이 비록 풀밭을 건드렸지만 이미 나는 놀란 뱀과 같다. 라는 뜻으로, 이것은 백성들이 자기 부하들의 비리를 고발한 것은 곧 우회적으로 자신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을을 징계해서 갑을 각성하게 하려 한 백성들의 의도는 충분히 달성되었다.
병법 36계에 나오는 '타초경사'는 숨어 있는 뱀을 잡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놀라는 척하며 풀밭을 두드려 뱀이 놀라서 나오게 하려는 계책이다. 즉, 변죽을 울려 적의 정체를 드러나게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반공사조(反共思潮) 완화정책으로 명방운동(鳴放運動)을 펴, 지식인과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고 선포했다.
이 명방운동은 '온갖 꽃이 같이 피고 많은 사람들이 각기 주장을 편다.'는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이란 구호로 표현되었다.
중국공산당은 또 '말한 자는 죄가 없고 들은 자는 반성해야 한다.' 며, 온 국민이 공산당 숙당운동(肅黨運動)을 도와줄 것을 제기했다. 즉, 잘못이 있다고 생각되면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과감히 비판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지식인들이 공산당을 소리 높여 비판하자, 마오쩌둥은 윤곽이 드러난 지식인들을 즉시 체포하고 정풍운동(整風運動)이란 명분 아래 줄줄이 숙청해 버렸다. 마오쩌둥은 뱀으로 비유되는 지식인들을 동굴로부터 끌어내기 위해 백화제방과 백가쟁명이라는 미끼를 던졌던 것이다.
여기서 유래한 타초경사(打草驚蛇)는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을(乙)을 징계하여 갑(甲)을 깨우침을 비유하거나 또는 변죽을 울려 적의 정체를 드러나게 하거나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한 말이다.

풍림화산 (風林火山 바람 풍, 수풀 림, 불 화, 뫼 산)
손자의 군쟁(軍爭)편은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하여 승리를 취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병법은 적을 속여 세우고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병력을 나누기도 하고 합치기도 함으로써 변화를 꾀한다. 그러므로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고, 적을 치고 빼앗을 때는 불이 번지듯이 맹렬하게 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故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숨을 때는 검은 구름에 가려서 별이 보이지 않듯이 하되, 일단 군사를 움직이면 벼락이 치듯이 신속하게 해야 한다. 우회하여 공격할 것인지 곧바로 공격할 것인지를 먼저 아는 자가 승리할 것이니, 이것이 군사를 가지고 싸우는 방법이다.’
이러한 전술을 전투에서 적극적으로 응용한 사람이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이다.
그는 이 전술에 감명을 받아 '풍', '림', '화', '산'을 한 글자씩 장식한 군기(軍旗)를 만들었으며, 이후 풍림화산은 그의 군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신겐은 병으로 죽을 때까지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타격을 입을 만한 패배는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풍림화산(風林火山)은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묵직하게'라는 뜻으로, 병법에서 상황에 따라 군사를 적절하게 운용하여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풍성학려 (風聲鶴唳 바람 풍, 소리 성, 학 학, 울 려)
진서(晉書)의 사현재기(謝玄載記)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동진 효무제 때에 전진(前秦)의 3대 임금인 부견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공격해왔다. 동진에서는 재상 사안이 동생 사석과 조카 사현에게 8만의 군사를 주고 나가 싸우게 했다. 양쪽 군대는 회수(淮水)와 비수가 만나는 수양에서 대치하고 있었는데, 부견은 동진의 진영이 질서가 정연하고 병사들이 용감한 것을 보고 휘하의 제장(諸將)에게 “전군을 약간 후퇴시켰다가 적군이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돌아서서 반격을 가하라.” 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는 부견의 오산이었다. 일단 후퇴 길에 오른 전진군은 반격은 커녕 멈추어 설 수조차 없었다. 후퇴를 개시하고 선봉군이 강을 건너 되돌아오기 시작하자, 후미의 전진군은 선봉군이 싸움에 패해 물러나는 것으로 오인하고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무사히 강을 건넌 동진군은 사정없이 전진군을 들이치니, 대혼란에 빠진 전진군은 아군이 적군으로 보이는 혼란 속에 서로 짓밟으며 달아나다 물에 빠져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겨우 목숨을 건진 남은 군사들은 갑옷을 벗어던지고 밤을 새워 달아났는데, 얼마나 겁에 질렸던지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 風聲鶴唳’만 들려도 동진의 군사가 뒤쫓아 온 줄 알고 도망가기 바빴다 한다.
‘풍성학려’가 청각적인 착각이라면, 적을 두려워한 나머지 온 산의 초목까지도 모두 적군으로 보인다는 뜻의 초목개병(草木皆兵)이라는 말은 시각적인 착각을 말하는 것으로, 같은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여기서 우래한 풍성학려(風聲鶴唳)는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겁을 먹은 사람이 하찮은 일이나 작은 소리에도 몹시 놀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합종연횡 (合縱連橫 합할 합, 세로 종, 이을 련, 가로 횡)
전국시대 중반(B.C 300년대 초반) 전국칠웅이 자리를 잡으며 패권을 다퉜다. 이 과정에서 상앙변법을 통해 강국으로 부상한 진나라 혜문왕이 각 제후국에 땅을 요구하며 동진을 추진해 독보적으로 나선다. 이때 주나라에 귀곡선생의 수제자 중 소진과 장의 두 희대의 유세가가 나왔는데, 먼저 소진은 자신의 유세술을 펼치기 위해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각국을 돌아다녔다.
처음엔 주나라 현왕을 알현하고 진혜문왕에게는 아버지 효공 때 상앙 같은 유세가의 무소불위를 봤기에 무시당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귀곡선생이 준 태공음부편(太公陰符篇)을 절차탁마해 유세술에 눈을 뜨고는 조나라 숙후를 찾아갔으나 정승 봉양군에게 퇴자 맞고, 다시 연나라 문공에게 의탁하여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이후 조나라 숙후를 다시 찾아가 6국이 연합해서 진(秦)에 맞서야 한다는 합종책을 내놓으며 각국을 돌아다니며 연합시켰다. 그때 그의 권세는 6국의 재상을 지낼 만큼 주나라의 왕권을 능가했다. 아뭏든 합종책이 진을 견제하며 빛을 보는가 했는데, 이때 소진과 동문수학했던 장의도 출사해서 유세술을 펼치려고 위나라 혜왕을 찾아갔다가 퇴자 맞고 초나라 위왕에게 의탁하다가 영윤 소양에게서 화씨벽을 훔친 주범으로 오해받아 치도곤을 맞았다. 하지만 입만은 살아서 다행이라며 부인에게 자랑을 했다한다.
이후 조나라에 있던 친구 소진을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려다 겉으로는 문전박대를 당했으나, 소진의 숨은 배려로 진(秦)혜문왕이 장의를 알아보고 능력을 인정받아 재상으로 올랐다.
진(秦)혜문왕에게 인정받은 능력은 6국을 이간질시켜 띄어 놓아 진나라에 속국으로 붙게 하는 것으로, 그래서 그는 소진이 제시한 합종책을 깨기 위해 첫 번째로 위나라와 연나라를 포섭(연나라 세자와 결혼)해서 진나라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꾀어 위나라에서도 재상직을 하여 진나라와 겸직한다. 이때부터 합종의 6국은 와해되기 시작되고 소진은 장의의 꾀로 진나라에 붙은 연나라를 책망하러 갔다가 도리어 연나라 왕에게 그러면 제나라가 우릴 침범한 일은 어쩌겠냐며 책망 받는다. 이에 소진은 연역왕의 어머니 문부인과 사통해 일부러 죄를 짓고 제나라로 도망가서 제선왕을 보필하며 눌러 지낸다.
이로써 소진은 장의의 연횡책에 위기감을 느껴 위, 조, 한, 초, 연 5개국 합종을 추진해 초회왕이 맹주로 추대되어 진나라를 공격했으나, 다들 동상이몽인지라 함곡관에서 대패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여기서 제나라가 빠졌는데 그 이유는 선왕에 뒤를 이은 제나라 민왕은 맹상군의 언질로 일부러 늦게 합류해 합종 대열에서 한발자국 빼었기 때문이다.
제나라는 안정감을 찾게 되고 제선왕 시절 잘나가던 소진의 세력은 꺾이며, 제민왕이 맹상군을 더욱더 중용하니, 합종의 실의 없음과 무용함을 들어 소진을 궁지로 내몰아 대부들이 자객을 시켜 암살시켰다. 이렇게 소진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출분했다가 최후의 말로를 맞은 것이다. 한편 위나라 정승으로 있던 장의는 육국이 진나라를 치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을 보면서 소진까지 죽자 더욱더 의기양양해 위 애왕을 설파해 진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게 하고 다시 진나라로 복귀한다. 이때 연나라는 공자 자지(子之)의 반란이 있었는데 이것을 제민왕이 평정하며 위세를 떨치자 종묘사직이 거들 나버린 연나라는 연소왕이 권좌에 올라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며 인재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여기서 악의가 등장한다.
한편 합종이 사라진 종국에는 초, 제, 진 삼국이 강국으로 부상되며 서로 암중모색했다.
여기서 장의가 또다시 나서서 제나라와 두터운 친교를 맺었던 초나라 회왕을 두 번이나 속여서 제나라와 절교하면 진나라의 땅을 떼어주겠다는 장의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 분통해하고 장의를 잡았다가 다시 풀어줬다.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서 두 나라를 이간질 시켜 초와 진이 통혼관계(회왕과 혜문왕이 서로의 딸을 시집보냄)를 맺어 동맹을 하게한다. 하지만 이때 제민왕이 그 사이 회왕이 진과 붙었다고 화가나서 회왕을 치니 그는 겁을 먹고 세자 횡(초경양왕)을 제나라에 볼모로 보내어 화친했다.
이에 이번에는 진소양 왕이 분통해하며 초나라 군대를 대패시키고, 초회왕을 사로잡기 위해서 빼앗은 땅을 돌려준다고 꼬여 대장 백기와 몽오를 출전시켜 진나라 함양 땅으로 오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초나라 대신 굴원과 소저는 극구 만류했지만 가야된다는 근상과 공자 난을 데리고 적지로 들어가 함양 땅에서 볼모로 잡히게 되었다. 이때 초나라에서는 왕위가 비었다 해서 곧바로 제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는 세자횡을 데려와 앉히니 그가 바로 초의 경양왕이다.
초회왕은 이렇게 제와 진에 굴욕을 당하며 볼모생활 중 도망치다 다시 잡혀와 분통해하며 피를 한말이나 쏟고 죽었는데, 이는 예전의 춘추말 진(晉)과 초가 동맹하던 시기에 두 곳에 붙으려던 정나라의 정간공과 같은 형세다. 이렇게 초회 왕이 죽게 되자 제와 동맹해서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파였던 충신인 대부 굴원은 진나라의 장의와 내통한 초경양 왕의 근신이던 정적 공자 난과, 간신 근상과, 왕의 애첩 때문에 삭탈관직 당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종묘사직을 달래다, 초나라의 국세가 기울고 조정에는 간신들만 득세하는 상황을 한탄하고 슬퍼하다가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그가 바로 초나라의 대신이자 애국시인으로 이름난 굴평이고 자는 원으로 회왕과 경양왕 2대에 결처 봉직하면서 주로 회왕을 섬겨 좌도(左徒)의 중책을 맡아 내정과 외교에서 활약했으며 학식과 문장이 뛰어나서 시경(詩經과 함께 중국 고대의 2대 시가집이라고 하는 초사(楚辭)의 저자다. 이런 그의 충절을 기려 후세에 5월 5일 멱라수에는 경도희(競渡戱 :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경주, 누가 굴원의 시체를 빨리 건져오나 내기하는 의미)라는 행사와 제사를 지낸다.
‘사당은 강가에 우뚝 섰는데 충렬왕에게 바치는 향불이 그칠 때가 없더라. 그 후 간신들의 뼈는 어디서 썩었는지 모르지만 백성들은 해마다 그날이 되면 배를 타고 충신을 조상하는 도다.’
이렇게 장의의 세치 혀는 얼빠진 초회왕을 갖고 놀고 충신까지 죽이며 초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합종의 소진보다 더 간교하고 뛰어나서 진나라를 중심으로 6국이 때에 따라 동맹관계를 맺게 해서, 지난날 소진이 이루었던 육국의 합종을 분리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후에 연횡정책의 중심에 서 있던 진혜문왕이 죽고 세자 탕이 계승하니 그가 바로 진무왕으로 이 왕은 용사 임비와 맹분을 데리고 주나라에 가서 용력을 자랑하려고 구룡신정을 드는 차력시범을 보이다가 놓쳐서 발목이 찍혀 병사했다.
진무왕이 그렇게 죽기 전 권세와 대신들의 반발의 위협을 느낀 장의는 스스로 실각함을 비치며, 때 마침 제민왕 침입의 눈을 돌린다며 위나라 애왕에게 출분해 정승으로 지내다 1년 뒤 병사하여, 소진의 최후와는 비교된다. 종국엔 장의의 연횡책은 실질적인 힘을 가진 진을 중심으로 했기에, 합종보다 더 현실적이며 안정성과 효율성을 지녀서 후에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는데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합종연횡(合縱連橫) 주나라 소진은 강국인 진나라를 대하여 약소국인 6개국이 연합하는 ‘합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장의는 현실적으로 약소국은 진나라 밑에 들어가야 살 수 있다는 속국론인 ‘연횡’을 주장했다.
* 합종책 : 전국시대,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6국 동맹책.
연횡책 : 6국이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하는 정책.
귀곡자 : 전국시대의 모사로 종횡가(縱橫家)를 이뤘다 하나 성명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제반 지식에 통달했다고 한다. 그가 숨어살던 귀곡(산서성 내)이란 지명을 따서 호를 삼고 종횡설의 법(法)을 적은 귀곡자(鬼谷子) 3권을 지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허장성세 (虛張聲勢 빌 허, 베풀 장, 소리 성, 기세 세)
진(晉)나라 장수인 위주와 선진이 위(魏)나라에 있는 오록성으로 쳐들어갔다.
이때 선진은 군사들에게 군대 안에서 쓰는 기인 기치(旗幟)를 많이 들고 산이나 언덕을 지나갈 때마다 기를 꽂으라고 하였는데, 숲에는 수없이 많은 기치가 나부꼈다.
위주가 ‘군사는 적진을 향해 소리 없이 쳐들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많은 기치를 꽂아 두어 적이 미리 방어하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하자, 선진은 곳곳에 기치를 많이 꽂아서 늘 강대국의 침략에 대해 근심하고 있는 약소국가인 위나라 백성들에게 우리 군대에 대한 위압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진(晉)나라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위나라 백성들이 성 위에 올라가보니 진나라의 기치가 온 산과 언덕에 셀 수 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위나라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달아났고 오록성의 관리들도 이 백성들을 막을 수 없었다. 진나라 군사가 오록성에 이르자 성을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선진은 무사히 오록성을 함락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허장성세(虛張聲勢)는 ‘비어 있고 과장된 형세로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약하지만 강한 것처럼 가장하여 실속은 없으면서 큰소리를 치거나 헛소문과 허세로 떠벌린다는 말이다.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데 과장하여 많다고 말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호왈백만(號曰百萬)도 비슷한 말이다.

화우계 (火牛計 불 화, 소 우, 꾀 계)
전국시대 때 제(齊)나라의 전단이 연(燕)나라 군대를 맞아 싸울 때 사용하여 크게 이긴 전법으로, 사기(史記)의 전단열전(田單列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연나라는 소왕의 인재등용정책과 선정으로 국력이 충실해지자, 제나라에 대한 보복을 감행했다. 소왕은 악의를 상장군으로 임명하고 동맹을 맺은 조(趙)·진(秦)·위(魏) 등의 다섯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를 공략하였다.
제나라 민왕은 군대를 이끌고 맞아 싸웠지만 크게 패하여 제나라 70여 성을 모두 잃고 위나라로 도망갔다. 제나라에는 오직 거와 즉묵의 두 성만 남게 되었다. 마침내 연나라와 동맹을 맺은 네 나라의 군대는 모두 돌아가고, 악의가 이끄는 연나라 군대만이 남아서 이 두 성을 포위하고 항복을 기다리는 대치상태가 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 연나라에서는 소왕이 죽고 혜왕이 즉위했고, 즉묵에서는 연나라 군대와의 싸움에서 장군이 전사하여 전단(田單)을 새로운 장군으로 삼았다. 전단은 연나라의 혜왕이 악의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자, 급히 첩자를 보내 악의를 모함하였다.
혜왕은 전단의 계략에 말려들어 악의를 파면시키고, 기겁(騎劫)으로 교체시켰다. 전단은 다시 첩자를 연나라 군대의 진중으로 보내, 기겁으로 하여금 무모한 짓을 하도록 유도하여 제나라 백성들을 흥분시켰다. 그리하여 연나라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어서 전단은 연나라 군대에게 거짓으로 항복하겠다고 사자를 보내자, 연나라 장병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즉묵 편에서 보낸 고기와 술을 마시며 밤늦도록 춤추며 즐겼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전단은 미리 성 밑을 파서 적의 진지로 돌격할 수 있도록 지하도를 여러 곳에 만들었다. 그리고 1,000여 마리의 소를 모아 오색의 용을 그린 붉은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고, 양쪽 뿔에 칼을 붙들어 매고 꼬리에는 기름을 묻힌 갈대를 매달았다. 적군이 술에 곯아떨어진 한밤중에 장사 5,000여 명이 칼을 들고 소떼의 뒤를 따라갔다.
적의 진지 가까이 가서 일제히 소의 꼬리에 불을 붙이자, 꼬리가 뜨거워진 소들이 미친 듯이 연나라 진지를 향해 내달렸다. 연나라 군대는 용처럼 생긴 괴물이 칼을 들고 들이닥치자 제대로 대항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죽거나 다쳤다.
장사 5천 명은 뒤처진 군사들을 처치하며 전진했다. 성 안에서는 북소리와 함성을 질러 사기를 북돋우고, 노인과 아이들은 구리그릇을 때려 소리 내어,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연나라 대장 기겁은 전사하고, 연나라 군대는 크게 패해 도망갔다. 마침내 적에게 항복했던 70여 성에서 연나라 군사를 몰아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유래한 화우계(火牛計)는 쇠뿔에 칼을 잡아매고 꼬리에는 기름을 뿌린 갈대 다발을 매달아 불을 붙인 후, 그 소떼를 적진으로 내모는 전법이다. 화우지계(火牛之計)라고도 한다.

지피지기백전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 ]

知 알지, 彼 저피, 己 자기기, 百 일백백, 戰 싸울전, 不 아닐불, 殆 위태할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으로, 상대편과 나의 약점과 강점을 충분히 알고 승산이 있을 때 싸움에 임하면 이길 수 있다.

춘추시대 오왕 합려의 霸業(패업)을 도운 孫武(손무)는 전국 시대에 초나라의 병법가로서 ≪吳子(오자)≫를 쓴 吳起(오기)와 더불어 병법의 시조라 불리는데, 그가 쓴 ≪孫子(손자)≫ 謀攻篇(모공편) 일명 ‘손자병법’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 ‘지피지기면 백전불퇴요’
적의 실정을 모른 채 아군의 전력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부지피이지기면 일승일부하며’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전력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 ‘부지피부지기면 매전필패니라.’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知彼知己百戰百勝(지피지기백전백승)’이라는 말은 병법엔 없는 와전된 말로서 병법의 ‘知彼知己 百戰不殆(지피지기면 백전불퇴)’와는 전혀 다른 뜻이다.
예를 들면, 병법 36계의 마지막 계책인 第36計 주위상(走為上)은 승산이 없으면 싸우지 말고 도망쳐라는 계책으로서, 열세에 처했을 때는 퇴각시켜 손실을 줄이라는 것이 36계 최후의 전술로, 이때는 도망치는 것이 상책(上策)이며, 매번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에서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병법서인《손자》는 당연히 전쟁에 이기기 위한 전술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손자는, 싸움터에서 군대의 세력을 전개시켜서 피로 물든 전투를 한 뒤에 적을 이기는 것은 전술가로서 하급[下之下]이라고 말한다. 즉 싸우지 않고서 이기는 것, 이것이 손자가 이상으로 하는 전략이다. 따라서 손자는〈시계편(始計篇)〉에서 무모한 전쟁에 대한 경계를 이야기 하였으며,〈작전편(作戰篇)〉에서는 전쟁이 국가와 백성들에게 주는 막대한 손실과 함께 부득이하게 전쟁을 할 경우 되도록 빨리 끝내야 할 필요성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모공편〉은 적군에게 이기는 방법, 즉 여러 가지 승리의 방법이 적혀 있다. 그 중 최선의 승리는 아군의 피해가 전혀 없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략으로 적군의 전의(戰意)를 꺾어야 할 것을 지적하였다.
손자는 결코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것을 상책으로 삼지 않았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상의 상책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서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상의 상책이다. 그러므로 으뜸가는 군대는 계략으로 적을 친다. 그 다음가는 군대는 서로 친다. 또 그 다음가는 군대는 적병을 치며, 그 아래의 군대는 성을 공격한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故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으뜸가는 군대는 계략으로 적을 친다’는 것은, 최상의 전쟁 방법을 말한다. 이것은 계략으로,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서로를 친다’는 것은 차선책으로서, 상대편의 동맹국으로 하여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즉, 상대편을 고립시켜 원조가 없는 상황으로 모는 방법이다.
그 다음이 싸움터에서 적과 대결하는 일이다. 그러나 상대편에게도 전략과 계략이 있으므로, 항상 최선의 방법을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상의 상책인 사람이 아닌 이상 백전백승의 길만을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아(彼我)를 잘 비교 검토한 다음에 전투에 임할 것을 권하고 있다. 여기서 지피지기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간첩(間諜)의 이용이다.
중국 역사상 누구보다도 먼저 간첩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가 바로 손자이다.
손자가 말한 대로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지피를 하여야 하는데, 이 지피는 적에 대한 정보가 필수이다. 따라서 상대편에 대한 정보의 입수를 위해서는 간첩의 활용이 우선이다.
〈용간편(用間篇)〉에는 이 간첩에 대한 이야기가 전문적으로 다루어져 있다.
손자가 말하는 간첩에는 향간(鄕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의 다섯 종류가 있다.
향간은 상대국의 주민을 고용하는 것이며, 내간은 관리를 고용하는 것이다. 현대의 고정 간첩과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반간은 일종의 이중간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정보를 흘리기 위해 이용한다.
사간은 반간보다 조금 더 복잡한 것으로 배반할 가능성이 있는 간첩이다. 그에게 거짓 정보를 주어 상대국에 보고하도록 하며, 이로 인해 적의 손에 처형되도록 한다. 끝으로 생간은 상대국의 정보를 탐지한 뒤에 살아 돌아와 상세하게 보고할 수 있는 간첩을 말한다. 제일 중요한 간첩이다.

병법 36계의 저자는 남송의 명장 단도제(檀道濟)


중국 고대부터 전해져 온 병법 36계는 가장 유명한 계책이지만, 지금까지 책을 쓴 연대나 작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어, 일반인들은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자의 계책으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이때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최근 36계의 저작 연대와 작가를 추정할 수 있는 옥간((玉簡·옥판 위에 새긴 서적)이 발견 되었다. 옥간의 진위에 대해 논란이 많았지만, 중국 고궁박물관과 옥기감정 전문가의 정밀 감정 결과 진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옥간은 66편에 919자로 제목에 36계라 기록되었고, 맨 뒤에 "개황(開皇) 16년 11월 1일 허진(何震) 각(刻)"이라고 쓰여 있다. 개황은 수나라 문제의 연호로 서기 596년이다.
36계가 역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남제서(南齊書) 왕경칙전(王敬則傳)이다. 이 책에는 단(檀)공의 36가지 계책 중에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다. 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로 미뤄 36계는 남북조시기에 이미 있었지만, 구체적인 저작은 명, 청대에 이르러 등장했을 것이란 설이 유력했다.
그러나 이번에 옥간이 발견되면서 수나라시기에 이미 저작으로 정리돼 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위진남북조 300년간의 혼란기에 당시 저명한 전술가며 송나라 무제(武帝)의 건국을 도운 남송의 명장 단도제(檀道濟)가 군사 전술을 종합한 36계를 정리했음이 확실해 보인다.

병법(兵法) 36계(計)중, 패전계(敗戰計) : 이는 전쟁에서 패하거나 극히 불리한 상황에서 취하는 전술이다. 第31計~ 第36計

패배를 승리로 반전시키고,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계인 것이다.


第31計 미인계(美人計) 아름다울 미(美). 사람 인(人). 계략 계(計)
아름다운 여인을 이용하는 계이다.
-.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오왕을 쳐서 이기기 위해 미인을 찾아내어 오왕에게 보냈다. 월왕은 오왕이 미녀에게 빠져있는 사이 국력을 증강하고 드디어는 오를 쳐서 멸망시켰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적의 장에게는 미인을 헌상하는 것이 최상의 책이다.
체력을 소모시키고 업무에 소홀해 지고 병사들은 퇴폐해지기 때문이다. 적에게 돈이나 물자를 보내는 것은 적의 전력을 증강시켜 아군을 공격해 오게 하는 최하의 책이다.



第32計 공성계(空城計) 빌 공(空). 성 성(城). 계략 계(計)
성을 비워 무슨 계책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계략이다.
-. 삼국시대 위나라(魏)의 중달은 15만의 대군으로 촉나라(蜀)의 제갈공명이 지키는 성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제갈공명이 지키는 성에는 2,500의 병사 밖에 없었는데, 공명은 기를 내리고 문을 개방하고 병사들을 숨기고 자신은 성의 위에 앉아 우아하게 금(琴)을 타고 있었다. 이것을 본 중달은 ‘저것은 무언가 계책이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공격하지 않고 철수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이 계는 거짓으로 적을 동요시키는 매우 위험한 궁여지책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지능적이 아니면 말려들지 않는다. 저돌맹진형(猪突猛進型)의 장(將)일 때는 이 것 저것 따지지 않고 돌진해 오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도박이 되는 계이다.
상대방의 이면의 이면을 읽는 심리전이다.



第33計 반간계(反間計)되돌릴 반(反). 사이 간(間). 계략 계(計)
간첩을 되돌려 쓰는 계략이다.
-. 적의 첩자를 포섭하여 아군의 첩자로 이용하거나 적의 첩자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을 속이는 방법으로 기만전술을 뜻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간(間)은 적으로 하여금 서로 의심하여 믿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이고, 반간은 아군을 이간하려는 적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적을 이간한다는 의미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주유의 남방군대에 비해 북방 출신인 조조의 군대는 기마전에 능했지만 수전에는 약한 편인데 주유 휘하의 수전에 능한 채모와 장윤이란 장수가 조조에게 투항하여 조조의 군대를 조련하였다.
주유가 내심 이를 걱정하고 있던 차에 조조의 참모로 주유와 동문수학한 장간이 항복을 권하러 주유를 찾아왔다. 주유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는 척하면서 탁자 위에 채모와 장윤이 보낸 것처럼 꾸민 편지를 놓아두었다. 장간은 이 편지를 보았고 또 주유가 다른 장수와 나누는 밀담에서 채모와 장윤에 대하여 말하는 것도 들었다.
장간은 편지를 훔쳐 빠져나와 조조에게 고하였다. 조조는 채모와 장윤을 오나라의 첩자로 오인하여 목을 베게 하였다. 이로써 조조의 군대는 수전의 약점을 보완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조조는 주유의 반간계에 넘어가 전력이 매우 우세하였음에도 대패하고 말았다.
- 초나라 항우는 한나라 유방에게 사자를 보냈다. 유방은 사자를 마치 왕후귀족처럼 대접했다. 그리고는 직접 만나 “아 범증님이 보낸 사자가 아닌가”라고 하며 큰돈도 주었다. 그 사자는 항우에게 돌아와 “유방이 저를 보고 범증님이 보내서 왔구나 라고 했습니다”라고 하자, 항우는 군사(軍師)인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 때부터 그의 제언(提言)을 듣지 않았다.
화가 난 범증은 항우 곁을 떠났고, 초나라에는 군사가 없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이 계는 적의 간첩을 역이용해서 상대방을 혼란시키는 계이다. 즉 적의 간첩을 잡아 후대하고 역정보를 주어 돌려보내는 것으로, 적은 자기들이 보낸 간첩이니 믿을 수밖에 없고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용한 계략이다. 그러니 정보에는 허실이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第34計 고육계(苦肉計) 쓸 고(苦). 고기 육(肉). 꾀 계(計)
내 육신을 괴롭혀서 이를 얻는 계략이다.
- 삼국시대 조조가 오를 침공했을 때 조조군은 대군인데 비해 오(吳)의 손권군은 열세였다.
오는 조조군의 배들을 태워 없애는 화공작전을 쓰려고 했으나 배에 근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군인 황개를 군율을 어겼다는 죄로 매질을 한 후, 감옥에 가두었다가 밤중에 도망치게 해서 조조에게 항복하게 했다. 조조는 이 계략을 모르고 황개를 영접하고 그를 믿고는 황개가 시키는 대로 배를 서로 묶는 연환계를 써서 오군의 화공전략이 통하게 되므로 대패를 당했다. 여기서 황개를 이용한 고육책이 유래된 것이다.
★ 아군의 손실 없이 적을 이기는 것보다 더한 상책은 없다. 그러나 쉬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다소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작전을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는 것이다.



第35計 연환계(連環計) 잇닿을 연(連). 고리 환(環). 꾀 계(計)
고리 같이 연결해 놓고 치라는 계략이다.
- 연환(連環)이란 고리를 연결한다는 뜻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교묘하게 연결시키는 계책이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으로는 ‘적의 장수와 병사들이 많을 때는 정면으로 대적할 수 없다.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묶어 놓게 함으로써 그 기세를 죽여야 한다. 아군의 군사(軍師)가 뛰어나면 하늘의 은총을 입는다 將多兵衆 不可以敵 使其自累 以殺其勢 在師中吉 承天寵也.’라고 하였다.
연환계의 예는 삼국지연의에 여러 차례 보인다.
왕윤이 초선을 이용하여 동탁과 여포를 이간함으로써 이들의 세력을 무너뜨린 것도 연환계의 일종이다.
적벽대전에서 조조는 대군으로 오를 침공했으나 수상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병사들이 역병에 시달렸다. 이를 본 오(吳)는 황개를 통한 고육책의 계략을 써서 조조에게 병사들의 고통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배를 서로 연결하면 흔들림이 줄어서 병사들이 회복될 것이다.’는 연환계를 제시하였다. 이를 들은 조조는 기쁘게 받아들여 쇠사슬로 배들을 서로 묶어 놓자, 기동성이 없어진 조조군에게 오군의 주유가 화공을 펼쳐 조조군의 선박을 모두 불태워 버림으로써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첩자를 적에게 보내 계책을 꾸미게 하고, 그 사이에 적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은 경우로서, 연환계의 대표적인 예다.
또 송나라의 장수 필재우는 금(金)나라 병사들과의 전투에서 진격과 퇴각을 거듭하여 하루 종일 적군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향료를 넣어 삶은 콩을 땅에 뿌려 놓고는 적을 도발하여 싸우는 척하다가 도망쳤다. 승세를 놓칠세라 추격하던 적군이 콩을 뿌려 놓은 곳에 이르자, 하루 종일 굶주린 적군의 말들은 콩을 먹느라 채찍을 휘둘러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필재우는 이 틈을 타서 역습하여 대승을 거뒀는데, 이 전략도 연환계의 한 예다.
아무리 좋은 계책이라도 때에 맞아야 하며, 그 때를 놓치게 하거나 역으로 잘못 판단하게 하는 계략이다.
★ 적이 강할 때는 정면으로 공격하기보다 적의 기동성을 둔화시키든가 적병들의 염전심(厭戰心)을 높이든가 적들 끼리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第36計 주위상(走為上) 달릴 주(走). 할 위(爲). 위 상(上)
도망치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 남북조시대 제(齊)나라 5대 황제인 명제는 고제의 사촌 형제인데, 고제의 증손(제3, 4대 황제)들을 죽이고 황제의 위를 빼앗았다. 그는 황제에 즉위한 이후 반란과 보복이 두려워 자기를 반대한 형제와 조카 14명을 살해한 것은 물론 자기 주위 사람들마저도 자신에게 반대하면 여지없이 죽였다. 그 뿐만 아니라 와병 중에도 왕족을 10여 명이나 죽였다.
명제의 가차 없는 살해 행위에 회계의 지방 태수 왕경칙은 개국 공신인데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군사를 일으켰다. 왕경칙은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건강(지금의 난징)을 향해 진격하였는데, 도중에 명제의 학정(虐政)에 불만을 가진 농민들이 가세하여 군사가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왕경칙은 출정한 지 10여 일 만에 건강과 흥성성을 함락하는 등 그의 기세는 파죽지세였다. 이때 병석에 누워 있던 명제 대신에 정사를 돌보고 있던 태자 소보권은 건강과 흥성성의 함락 소식을 듣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소보권의 피난 소식을 들은 왕경칙은 “단(檀) 장군의 36가지 계책 가운데 도망치는 것이 제일 상책이니 너희 부자는 어서 도망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檀公三十六策 走爲上策 計汝父子唯有走耳.”라고 자신 있게 충고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당당한 왕경칙도 결국 제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어 참수 당하였다. 승산 없는 싸움은 피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이 있듯이 상황이 불리하면 일단 후퇴하였다가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지혜로운 군사적인 전술이다.
주위상(走爲上)은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전세가 매우 불리하면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라는 것이다.
단 장군은 남북조시대 남조 최초의 왕조인 송(宋) 무제의 건국을 도운 명장 단도제로, 북위(北魏)와 싸울 때 전세가 불리하면 잘 도망쳤다고 한다. 또한 한 고조인 유방도 항우의 강력한 군대에게 계속적으로 패배를 당했으나, 싸움에는 지면서도 보급로는 항상 확보하면서 도망 다녔다. 그 결과 전술적으로는 지고 있었으나 전략적으로는 포위망을 구축해 나가 결국에는 항우를 이길 수 있었다.
★ 승산이 없으면 싸우지 말고 도망쳐라. 열세에 처했을 때는 퇴각시켜 손실을 줄이라는 것이 36계 최후의 전술이다. 도망치면 이기지는 못해도 지는 것은 아니다. 병력을 보존하였다가 다시 공격하면 되는 것이다. 옥쇄를 하여서는 재기할 수가 없다.


병법(兵法) 36계(計)중, 병전계(倂戰計) : 이는 불의의 사건에 대비한 전술이다. 第25計~ 第30計

전쟁 중에는 아군의 내부에도 항상 적이 숨어 있기 마련이며, 언제 어느 곳에서 칼을 들이댈지 모르는 것이다.


第25計 투량환주(偸梁換柱) 훔칠 투(偸). 대들보 량(梁). 바꿀 환(換). 기둥 주(柱)
대들보를 훔치고 기둥으로 바꾸어 넣는다.
- 진나라(秦)의 시황제는 제나라(齊)의 재상 후승과 그의 부하들을 매수하고 진나라로 꼬아냈다.
꼬여낸 후 그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첩보원으로 양성한 후에 제나라로 돌려보냈다. 돌아가서 진나라는 강대한 나라로 인식시키라고 하였다.
그 후 진군이 제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제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진나라는 강대한 나라라고 인식되어 기가 죽어 있었기 때문에 감히 대항하려 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계략은 상대방의 뼈를 빼내라는 계략이며 적국은 물론 동맹국에게도 이용된다.
적의 조직에 내 사람을 넣어 중요한 곳을 조금씩 잠식한 후 드디어는 상대방을 몽땅 빼앗는 비겁한 계략이지만 평화적인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는 여러 제후국들이 패권을 차지하려 다투면서 각자의 유리함을 택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하였다. 따라서 오늘의 동맹국이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하여, 서로 연합하여 싸울 때도 주도권을 잡아서 연합국을 아예 자기편으로 흡수하는 전략을 쓰기도 하였다.
'량(梁)'은 대들보이고 '주(柱)'는 기둥이니, 집을 지탱하는 중추를 가리킨다. 그 중추를 교란 또는 탈취함으로써 적을 붕괴시키는 전략이 ‘투량환주’다.
이 전략에 대하여 ‘진지를 자주 바꾸게 하여 그 주력을 추려내고, 마차 바뀌를 빼내어 마차를 멈추게 하여 스스로 패하기를 기다린다 頻更其陣 抽其勁旅 待其自敗 而後乘之 曳其輪也.‘는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
즉, 우군인 연합국을 고의로 패하게 만들어서 자기 세력으로 흡수하는 것으로도 풀이되며, 정치적 모략으로도 응용된다.
진(秦)나라의 시황제는 임종을 앞두고 재상인 이사에게 맏아들 부소로 하여금 황위를 잇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때 부소는 북방에서 경험을 쌓고 있었다.
이사는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부소가 올 때까지 시황제의 죽음을 비밀로 하였다. 그러자 환관의 우두머리인 조고는 이사를 찾아가 부소가 후계자로 지목된 사실은 자신과 이사 두 사람밖에 모르니, 막내 아들인 호해가 후계자로 지목되었다고 속이면 아무도 모를 것이며, 이사도 재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문서를 조작하여 호해를 옹립하고, 부소를 살해하였다. 조고는 자신의 뜻대로 황제의 자리를 바꾼 것이다.
이 처럼 투량환주(偸梁換柱)는 ‘대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바꾼다.’ 라는 뜻으로, 겉은 그대로 두고 내용이나 본질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 이것은 마차바퀴를 빼내어 마차를 멈추게 하라는 계략이다.



第26計 지상매괴(指桑罵槐) 손가락 지(指). 뽕나무 상(桑). 욕할 매(罵). 홰나무 괴(槐)
뽕나무를 손가락질하며 홰나무를 욕한다.
-. 제나라(齊)가 연나라(燕)에게서 공격을 받자 사마라는 장군이 전군을 소집했다. 그러나 왕의 총신(寵臣)인 장가는 기한을 넘기고 도착했다. 변명을 하며 왕의 도움을 청하려는 장가를 사마 장군이 군법으로 즉결 처형하였다. 이것을 본 병사들은 떨며 통제에 순응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우호국이나 부하에게 직접 화를 낼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간접적으로 야단치는 계이다. 이것은 통솔력을 유지하기위한 연기의 하나이다.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믿고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느슨해 질수 있기 때문에 때로는 엄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심지어 본인의 동의를 얻어 야단받이를 만들어 놓고, 여러 사람 앞에서 야단치는 수법도 있다. 그 야단받이가 높을수록 효과는 더 크다.
★ 적당히 강경하면 상대방을 순응하도록 만들고 크게 강경하면 상대방을 순종하도록 만들 수 있다.



第27計 가치불전(仮痴不癲) 거짓 가(假). 어리석을 치(癡). 아니 불(不). 미칠 전(癲)
바보인 척은 하되 미친 척은 하지 말라.
- 삼국시대 위나라(魏)의 원로인 중달은 왕의 신임으로 절대 권력을 가진 조상(曺爽)에게 잘못 보여서 실권도 없는 지위에 머물렀다.
그는 한때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중달의 행동을 수상이 여긴 조상은 부하에게 병문안을 가서 살펴보고 오라 하여 가보니 중달은 의복을 흐트러트리고 죽을 흘리고 정신이 나간 것 같이 행동했다. 이것을 본 부하들은 정말 정신이 나간 것으로 알고 조상에게 그렇게 보고했다. 그렇게 해서 방심하게 해 놓은 중달은 어느 날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잡았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계는 매는 발톱을 숨긴다는 속담과 같은 것으로 자기의 속을 숨기고 바보나 무능하게 보이면 상대방이 방심하게 될 때 치라는 것이다.
★ 이것은 둔괘의 괘상에서 나온 것이다.



第28計 상옥추제(上屋抽梯) 위 상(上). 집 옥(屋). 뺄 추(抽). 사다리 제(梯).
사람을 지붕위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라.
-. 적에게 작은 이득을 주어 아군의 깊숙한 곳으로 유인한 뒤에 원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차단함으로써 적을 사지에 빠뜨리는 계책이다.
손자(孫子)의 구지(九地)편에도 ‘장수가 병사들을 이끌고 싸울 때에는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한 뒤에 사다리를 치우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帥與之期, 如登高而去其梯.’고 하였다.
이 고사성어의 전거가 되는 이야기는 삼국지의 제갈량전에 실려 있다.
후한(後漢) 시대 말기에 유표의 맏아들 유기는 계모의 미움을 받았다. 그는 제갈량에게 자신의 안전을 지킬 방법을 물었으나, 제갈량은 남의 집안일이라 하여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유기는 어느 날 제갈량을 청하여 높은 누각에 올라가 주연을 베푼 뒤에, 몰래 사람을 시켜 누각으로 오르내리는 사다리를 치워 버리게 하였다. 그러고는 이제 위로 올라갈 수도 없고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게 되었으니 방법을 일러 달라고 하였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제갈량은 하는 수 없이 중이(重耳)의 예를 들며 몸을 피하라고 일러 주었다. 이에 유기는 곧 외지로 파견해줄 것을 자청하여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또한 초의 항우가 진에게 포위당한 동맹군을 구출하려고 출동했을 때, 항우는 황하를 건너자 배를 모두 침몰시키고 3일 분의 식량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고 병사들의 천막도 모두 태워버렸다. 그리고는 3일 안에 진군(秦軍)을 파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병사들에게 선언했다.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결사의 각오로 싸워 진군을 격멸시켰다.
이 계는 적에 대해서는 미끼를 던져 유인해서 함정에 빠트리라는 것이며, 아군에 대해서는 결사의 각오를 시키라는 계로서 어느 쪽이든 과감한 작전인 것이다.
★ 계략으로 적군을 아군 깊숙이 유인한 후 후원군을 차단하고 치는 계략이다.



第29計 수상개화(樹上開花) 나무 수(樹). 위 상(上). 열 개(開). 꽃 화(花)
나무에 꽃을 피워 과시하라.
-. 전쟁 중, 아군의 병력이 열세일 때가 있다. 이럴 때 타군의 힘을 빌리거나 허수아비 군대를 많이 세워 아군을 대병력으로 보이게 해서 적군을 위압하는 계략으로 그 사이에 병력을 정비하거나 철퇴(撤退)하는 것이다.
병법의 내용은 ‘형세에 따라 위세를 떨치면, 작은 세력이라도 큰 세력처럼 꾸밀 수 있다. 기러기가 높은 하늘을 날 때 무리를 지어 날개를 활짝 펴고 대형을 이루어 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借局布勢 力小勢大 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也.’ 곧, 아군의 힘이 약할 때, 다른 세력이나 어떤 요인을 빌려 아군을 강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들어 굴복시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장비가 장판교를 필기 단마로 지키며 조조의 대군과 맞설 때 수상개화의 계책을 이용하였다. 그때 유비는 조조의 군대에 쫓겨 달아나고 있었다. 장비는 2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장판교를 지키며, 병사들로 하여금 말꼬리에 나뭇가지를 매달고 숲 속에서 이리저리 달리게 하였다. 그로 인해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 멀리서 보면 마치 대군이 몰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조조의 군대가 장판교에 이르렀을 때, 장비가 다리 앞에 홀로 서서 대적하였다. 조조는 장비의 용맹이 두렵기도 하고 복병이 있을지도 몰라 선뜻 공격하지 못하던 차에 장비가 빨리 싸우자고 내지른 벼락같은 호통소리에 놀라 도망치고 말았다.
수상개화(樹上開花)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 라는 뜻으로, 본래 꽃을 피울 수 없는 나무에 조화(造花)를 진짜 꽃처럼 장식하여 상대방을 속인다는 말이다.
철수개화(鐵樹開花:쇠나무에 꽃이 피다)가 전화(轉化)한 것으로, 원래는 지극히 실현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 허풍도 때에 따라서는 큰 힘이 된다. 병력이 약한 부대를 강력한 부대인 듯 위장하는 계이다



第30計 반객위주(反客為主) 되돌릴 반(反). 손님 객(客). 할 위(爲). 주인 주(主)
객이 반대로 주인이 된다.
-. 항우와 유방은 각자의 군을 이끌고 진의 도읍인 함양을 공격했다. 그런데 소군인 유방의 군이 먼저 들어가자 분하게 여긴 항우는 유방을 죽이려했다. 그러자 그것을 안 유방은 항우에게 찾아가 사죄했고 그 후에도 계속된 괴롭힘을 견디며 세력을 키워나가 드디어는 항우를 치고 한(漢)의 황제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구르는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다. 틈이 생기면 우선 발을 집어넣고 차츰차츰 영향력을 확대해서 드디어는 주도권을 장악하라는 계이다.


병법(兵法) 36계(計)중, 혼전계(混戰計) : 이는 치열한 전투 중에 대처할 수 있는 전술을 말한다. 第19計~ 第24計

동(動)은 양(陽)이고, 정(靜)은 음(陰)이며, 란(亂)은 양(陽)이고, 치(治)는 음(陰)이니, 진정과 질서는 난을 평정하고 얻을 수 있는 결과이다.


第19計 부저신추(釜底薪抽) 솥 부(釜). 밑 저(底). 땔나무 신(薪). 뺄 추(抽)
솥 밑에서 나무를 빼낸다.
-. 풀을 베어내고 뿌리를 캐낸다는 중국 북제(北齊)에서 유래된 말로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가마솥도 그 밑에서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면 식을 수밖에 없다.
섣불리 찬물을 붓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문제의 근본을 찾아 해결하는 말로서, 전략적으로는 적을 직접 공격하는 것보다 보급로를 차단하면 아무리 강력한 군대도 굶어서는 싸울 수가 없는 것이며, 아무리 무기가 있어도 탄환이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반대로 아군의 보급로 확보도 중요한 것이다.
★ 강한 적을 만났을 때는 정면으로 공격 보다 약한 곳을 찾아내어 공략 것으로 부드러운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기는 계이다.



第20計 혼수모어(混水摸魚) 섞을 혼(混). 물 수(水). 찾을 모(摸). 고기 어(魚)
물을 섞어 고기를 찾는다.
-. 명나라 때 영왕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양명은 대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양명은 영왕의 심복 앞으로 ‘그대가 보내준 정보는 잘 받았다. 그대의 충성심에 감사한다. 빨리 영왕을 속여 본거지에서 몰아내라’라는 가짜 편지를 써서 영왕군의 내부로 보내어 발각되도록 하였다. 이 편지를 본 영왕은 ‘심복이 적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출진을 멈추는 사이 양명은 군비를 갖추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물을 뒤섞어 흐리게 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해놓고 고기를 잡아라는 것이니 적의 내부를 교란시켜 승리를 얻는 전략이다. 사람은 조직을 만들면 반드시 파벌이나 세력을 만든다. 그 중에서 가장 약한 곳을 찔러 혼란시켜 공격하라는 것이다.



第21計 금선탈각(金蝉脱殻) 황금 금(金). 매미 선(蟬). 벗을 탈(脫). 껍질 각(殼)
금매미가 껍질만 남겨놓고 알맹이는 빠져나갔다.
-. 송나라 때 우세한 송군에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금군은 철퇴(撤退)를 결의했다. 그리고는 진지에 많은 기를 세워 휘날리게 하고, 많은 양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그 발에 북채를 묶어 놓고, 그 앞에 북을 매달아 놓았다. 그러자 양들이 발버둥을 쳤고 그 발에 묶어 놓은 북채가 북을 요란하게 두들겨 금군이 여전히 주둔하고 있는 것 같이 적군을 속여서 무사히 철퇴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 전쟁에서는 철퇴가 가장 어렵다. 철퇴하는 것을 적이 알면 기가 살아서 공격해 오기 때문이며, 아군은 돌아서서 싸워야하기 때문에 큰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퇴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第22計 관문착적(関門捉賊) 닫을 관(關). 문 문(門). 잡을 착(捉). 도둑 적(賊)
문을 닫아걸고 도둑을 잡는다.
-. 옛날 진군(秦軍) 50만과 조군(趙軍) 40만이 격돌하였다. 드디어 진군의 계략에 의해 조군의 대장이 죽고 조군은 항복했다. 그러나 언제 변심할지 모르는 40만의 조군 병사를 두려워한 진군은 계모(計謨)로서 항복한 적군 모두를 생매장했다.
40만의 대군을 잃은 조나라는 이후 급속히 쇠퇴했다. 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것은 적을 포위 섬멸하는 계략으로 두 가지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즉 적이 약소하고 전의가 낮을 때와 도망치게 하면 장래 화근이 될 때이다. 그러나 섣불리 이 계략을 사용하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결과가 되어 아군이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 문을 닫아걸고 도적을 잡으라는 계이다.



第23計 원교근공(遠交近攻) 멀 원(遠). 사귈 교(交). 가까울 근(近). 칠 공(攻)
멀리 있는 나라와는 사귀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친다.
-. 진나라(秦) 소왕(昭王)은 멀리 있는 제나라(齊)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가신인 범저가 말렸다.
“지난 날 제나라가 멀리 있는 초나라(楚)를 쳐서 승리하고 영토를 넓혔으나 결국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이 옆의 한나라(韓)와 위나라(魏)가 군비를 증강했기 때문입니다. 곧 가까운 곳에 도적을 키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라는 말에 소왕은 옆의 한나라 부터 쳐서 멸망시키고 다시 위나라, 초나라, 연(燕)나라를 병탄(倂呑)한 후에 최후에 제나라를 공격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외교전술(外交戰術)의 기본이다. 근국은 과거의 일들 때문에 사이가 안 좋을 때가 많다. 어찌되었건 우선 집안부터 튼튼히 하고 그 다음에 인접한 지역으로 넓혀 가라는 것이다.
★ 근접한 적부터 먼저 공격하여 취하는 것이 이롭다는 계이다.



第24計 가도벌호(仮道伐鯱) 빌릴 가(仮). 길 도(道). 칠 벌(伐). 물 호랑이 호(鯱) or
가도멸괵 (假途滅虢 빌릴 가(仮). 길 도(道). 멸망할 멸(滅). 나라이름 괵(虢)
거짓으로 길을 빌려 호(괵)나라를 쳤다. 이 이야기는 천자문에도 실려 있다.
- 춘추시대에 진(晋)나라 옆에 우(虞)나라와 호(鯱 or 괵;虢)나라 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진나라의 헌공이 호(or괵)나라로 쳐들어가려고 순식에게 의견을 묻자, 순식은 호(or괵)나라로 가려면 우나라를 통과해야 하므로 우나라 왕에게 진라의 보물인 옥과 말을 선물로 보내어 길을 빌려 달라 해야 한다’고 하였다.
순식의 계략에 따라 진나라의 헌공은 우나라에 보물인 옥과 말을 보냈는데, 그러자 우나라 재상인 궁지기는 왕에게 ‘진나라는 호(or괵)나라를 멸망시킨 뒤 우나라도 쳐들어올 것이므로 길을 빌려주면 안 될 뿐 아니라 우나라와 호(or괵)나라는 이와 입술 같은 사이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脣亡齒寒 순망치한) 호(or괵)나라가 무너지면 우나라도 위험함으로 거절하셔야 합니다.’하고 간언하였다.
하지만 평소 욕심이 많은 우나라 왕은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진나라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결국 진나라는 우나라로 군대를 통과시켜 괵나라를 무너뜨린 수년 후 우나라까지 쳐서 멸망시켰다.
이 후로 가도벌호(仮道伐鯱) or 가도멸괵(假途滅虢)은 길을 빌리는 명목으로 정복하는 의도를 숨긴 후, 목적을 성사시키는 군사계획의 계책이 되었다.
이것은 대의명분을 내걸고 소국을 병탄(倂呑)하는 계략이며, 반대로 소국은 대국에게 병탄되지 않도록 항상 외교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임진왜란 때 왜가 조선에 요구한 것도 명을 치려하니 길을 빌려 달라는 뻔한 수법을 거부함으로 일어난 전쟁이었다.

★ 적과 우군 사이에 있는 약소국을 적이 공격할 경우 아군이 즉각 구원해 주어야 하며, 군사력을 증강하여야 한다는 계이다.

병법(兵法) 36계(計)중, 공전계(功戰計) : 이는 전투에 직접 적용하는 계이다. 第13計~ 第18計

공격과 방어는 상대적이며 보완적인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위태롭지 않다.


第13計 타초경사(打草驚蛇) 칠 타(打). 풀 초(草). 놀랄 경(驚). 뱀 사(蛇).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한다.
-. 옛날 당(唐)나라 때 어느 오리(汚吏)의 비행(非行)을 보다 못한 민중이 대거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에 놀란 오리는 저들은 풀을 친 것이지만 나는 뱀처럼 놀랐다고 한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병법에도 군대가 산림이나 풀 숲 험한 산 등을 진군할 때는 철저히 경계하면서 진군하라고 되어 있다. 적이 안 보일 때는 수색부터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더구나 적의 작전을 모를 때는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지휘관의 급선무다. 그러나 적의 계책(計策)을 알아냈을 때가 위험한 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역정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신중해야하고 별책(別策)을 강구해 두어야 한다.



第14計 차시환혼(借屍還魂) 빌릴 차(借). 죽음 시(屍). 돌아 올 환(還). 넋 혼(魂)
남의 시체를 빌려 넋이 돌아왔다.
-. 원곡선(元曲選)이라고 하는 시 속에서 죽은 여인이 남의 시체를 빌려서 혼을 되돌려 살아났다는 대사에서 나온 말이다.
★ 이 세상에는 꼭 필요한 물건과 필요치 않는 물건이 있다. 당연히 필요한 물건일수록 중요하고 중요할수록 빌릴 수가 없다. 이 전략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필요 유무는 이용방법 여하에 달린 것이다. 그것은 물자에도 인재에도 적용된다. 그러니 아무것이라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라는 것이며 이용할 수 없는 것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라는 것이다.



第15計 조호리산(調虎離山) 길들일 조(調). 호랑이 호(虎). 떼놓을 리(離). 뫼산(山)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을 떠나게 한다.
-. 산중의 왕인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가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산중을 떠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 이 처럼 요새에 틀어박혀 굳게 지키기만 하는 적은 밖으로 끌어내어 공략해야 한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은 ‘하늘이 적을 곤란하게 만들 때를 기다리고, 인위적으로 적을 유인하여 그 행로를 어렵게 만든다 待天以困之 用人以誘之 往蹇來連.’는 것이다.
곧 자연적인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들이 적에게 불리할 때를 기다리고, 위장 전술을 펴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근거지를 벗어나게 함으로써 우세한 점을 잃게 한 뒤에 제압하여 승리를 취한다는 말이다.
손자(孫子)는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며 적이 유리한 지역에서 싸우는 것은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는 것이다. 산은 호랑이의 거처로서 호랑이에게 절대로 유리한 곳이다. 그러니 호랑이를 산에서 유인해내어 잡으라고 했다. 적에게 유리한 지역에서 불리한 지역으로 유인해 내어 치라는 것이나 적도 불리한 지역으로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니, 적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라는 것이다.
★ 적에게 불리한 곳으로 유인해 내던가, 함정을 파 놓고 유인하던가, 호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하라는 것이다.



第16計 욕금고종(欲擒嫴縦) 욕심 낼 욕(欲), 사로잡을 금(擒). 잠시 고(嫴). 놓아줄 종(縱)
잡으려거든 잠시 놓아주라.
-. 오나라 손권은 맥성의 관우를 공격할 때, 성의 북쪽 험한 소도를 일부러 비어 놓았다. 관우가 그 길로 도망치게 한 후 잡기위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관우는 그것도 모르고 그 길로 도망치다가 잡히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 전쟁에서 궁지에 몰리어 죽게 되면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과 같이 필사적이 된다. 어차피 죽을 바엔 하나라도 더 죽이고 죽겠다는 심산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도망칠 길을 열어주면 도망치려고만 하지 대항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쪽에 도망칠 길을 열어주고, 그 쪽으로 도망치게 한 후 치라는 것이다.



第17計 포전인옥(抛磚引玉)던질 포(抛). 벽돌 전(磚). 끌 인(引). 구슬 옥(玉)
벽돌을 던져서 옥을 끌어온다.
-. 당나라 때 조하와 상건이라는 두 시인이 있었다. 상건은 자신의 시가 조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조하가 소주(蘇州)에 유람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상건도 소주에 있었으므로,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하의 시를 배우고 싶었다.
상건은 조하가 소주에 오면 유명한 영암사(靈巖寺)에 반드시 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사묘(寺廟)의 벽에 시를 절반만 지어 적어 놓았다. 과연 조하는 영암사에 들렀다가 벽에 적힌 미완성의 시를 보고 나머지 절반을 채워 넣었고, 상건은 자신의 뜻대로 조하의 시와 그의 완성된 시를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를 두고 상건이 ‘벽돌을 버리고 옥을 얻은 격’이라고 말하였다. 벽돌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의견이나 작품을 뜻하며, 옥은 다른 사람의 훌륭한 작품이나 고명한 의견을 뜻하는 것으로, 병법으로는 ‘비슷한 것으로써 유인하여 어리석은 적을 치는 類以誘之 擊蒙也’계책으로, 벽돌은 미끼를 뜻하며 옥은 승리를 뜻한다. 곧 미끼로 적을 유인하여 아군의 작전에 휘말리게 함으로써 승리를 얻는 전술이다.
옛날 흉노와 한(漢)이 전쟁할 때 한의 군대에 많은 동사자가 발생했다. 그런 어느 날 흉노가 갑자기 퇴각하였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한에서는 흉노도 동사자가 발생해서 퇴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추격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을 방심케 한 후 공격하려는 흉노의 계략이었다. 한은 그런 것도 모르고 방심하고 있다가, 흉노의 대군에게 역습을 당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 작은 미끼로 큰 이득을 도모하라. 극히 유사한 것으로 적을 미혹시킨 후 공격하라는 것이다. 적을 유인하는 전략에는 의사(擬似)와 류동(類同)의 두 가지가 있다.
의사라는 것은 거짓으로 유인하는 것이고, 유동이라는 것은 아군이 쇠약해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서 유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를 흔들고 큰북을 처서 거기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이 보여서 적을 함정으로 유인하는 전략이 의사(擬似)이고, 아군에게 식량이 떨어졌다고 보이게 해서 지금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공격하게 하는 전략이 유동(類同)인 것이다. 병법에서 의사는 탄로 나기 쉽고, 유동은 탄로 나기 어렵다고 되어 있다.



第18計 금적금왕(擒賊擒王) 사로잡을 금(擒). 도둑 적(賊). 사로잡을 금(擒). 임금 왕(王)
도적을 잡으려거든 임금부터 잡으라.
-. 장(將)을 잡으려거든 그가 타고 있는 말을 쏘라. 도적집단 전체를 잡으려면 먼저 그 두목을 잡으라는 중국 고시에서 유래된 말이다.
★ 적의 급소를 찔러 약화시켜 놓고 전체를 잡으면 용이한 것이다.
목적과 목표를 혼동하지 말라고 전략가들은 말 한다. 도적 전체를 잡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것을 위한 목표는 먼저 두목을 잡아 조직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순서를 생각하면서 추진하라는 말이다.

병법(兵法) 36계(計)중, 적전계(敵戰計) : 적과 아(我)의 전력이 대등할 때 계략으로 적을 말려들게 하여 격멸하는 병법이다. 第7計~ 第12計


第7計 무중생유(無中生有) 없을 무(無). 가운데 중(中). 생 할 생(生). 있을 유(有)
없는 것 속에 생이 있다는 말이니, 있어도 없는 것 같이 보이라는 허허실실(虛虛實實)의 계략이다.
-. 후한시대 손견은 유표가 다스리는 강하성(江夏城)을 공격했으나 성의 수비가 강하여 성과가 없자, 매일 밤 많은 소선(小船)에 등불을 켜고 배 안팎에 물을 잔뜩 먹인 짚단을 둘려 붙여서 화살이 꽂히게 하여 적진에 접근시켰다. 강하성의 성주 황조는 그 때마다 공격해 오는 것으로 알고 화살을 퍼 부었다. 그러다가 7일만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 다음날은 그 배들이 와도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그 배들에는 많은 군사들이 타고 있었으며 거기다가 강하성의 군사들이 이때껏 쏜 화살을 비축해서 결국 성을 함락시켰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아군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판을 일으키게 한 후, 암암리에 행동으로 옮기는 이런 작전에 말려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익괘의 원리에 따라 처음 시작단계에서는 작은 가상(假像)을 사용하다가 계속 큰 가상으로 확대해 나가다가 결국에는 진상(眞相)을 갑자기 드러내는 형상에서 나온 것이다.



第8計 암도진창(暗渡陳倉) 어두울 암(暗). 건너 갈 도(渡), 진창(陳倉 고을 이름)
암암리에 진창으로 건너가다.
-. 항우는 유방을 경계하여 한왕(漢王)으로 봉함으로써 군사 요충지인 관중을 떠나 한중으로 가도록 하였다. 유방은 관중을 떠날 때 장량의 권고를 따라 잔도(棧道)를 불태워 버렸다. 잔도는 험한 벼랑에 나무로 가설해 놓은 길인데, 관중으로 통하는 이 길을 스스로 없애 버림으로써 자신이 관중을 넘볼 마음이 없다는 뜻을 항우에게 보여준 것이다.
한중에서 세력을 형성한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동쪽을 정벌할 계획을 세웠다. 한신은 군사들을 시켜 불타 버린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였다. 관중을 지키던 초나라 장수 장한은 잔도를 수리하는 기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방심하면서도 군사들을 잔도로 집결시켰다. 장한이 잔도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동안, 한신은 대군을 이끌고 우회하여 진창을 점령하고 관중을 함락시킴으로써 중원으로 진출할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로부터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겉으로는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몰래 진창으로 건너가다)’이라는 말이 생겼다.
여기서 유래한 암도진창(暗渡陳倉)은 ‘몰래 진창으로 건너가다.’라는 뜻으로,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장하여 적이 병력을 그쪽으로 집결시키도록 한 뒤에 방비가 허술한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이다. 이는 제6계인 성동격서(聲東擊西)와 비슷한 계책이다. 또 적에게 거짓된 정보를 흘려 역으로 이용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고, 남녀 간의 부정한 행위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 전술에는 이와 같은 우회작전(迂回作戰)이 잘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정면이 제일 강한 것이니, 강한 곳을 공격하지 말고, 적의 허를 찔러 허술한 곳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단 이 전술을 사용하려면 정공법(正攻法)이 있다는 것과 우회를 적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 즉, 정면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고 믿게 하지 않으면 측면을 허술하게 할 수 없음으로, 우회가 발각되면 아군이 타격을 받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 고의로 자신의 공격방향을 노출시켜 적이 이에 대비하도록 유도하고, 실제로는 다른 곳으로 우회 공격하게 하는 것이다.



第9計 격안관화(隔岸観火) 사이가 떨어질 격(隔). 언덕 안(岸). 볼 관(觀). 불 화(火)
건너편 언덕의 불을 구경한다.
-. 삼국시대 원상 등은 조조에게 패하여 요동의 공손강에게 도망쳤다.
조조는 이를 추격하다가 공손강을 공격하면 원상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군을 되돌렸다. 그러자 애당초부터 원상을 두려워했던 공손강은 원상 등을 베어 조조에게 보냈다. 즉 남의 싸움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 상대방에게 내분이 있을 때, 섣불리 손을 내밀면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이것은 제5계인 진화타겁(趁火打劫)의 역(逆)이다. 그러니 손을 내밀 것인가, 구경만 할 것인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이 계는 자국의 내분에도 사용된다.
대립되는 국내여론을 통일하거나, 관심을 타(他)로 돌리고자 할 때 강력하고 악역한 적을 만들어 관심을 그쪽으로 돌리게 하고 뭉치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적의 강악(强惡)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국민으로 하여금 적은 강악하고, 우리는 정의라고만 믿게 하면 되는 것이다.
적에게 내분이 생기면 극에 달하기를 조용히 기다려라. 적들이 서로 반목하고 원수가 되어 싸우면 반드시 멸망으로 치닫게 되니 구경만하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第10計 소중유도(笑中有刀) 웃을 소(笑). 가운데 중(中). 있을 유(有). 칼 도(刀) or 소리장도(笑裏蔵刀) 웃을 소(笑). 속 리(裏). 숨길 장(藏). 칼 도(刀)
웃음 속에 칼이 있다. 또는 웃음 뒤에 칼이 있다.
-. 부드러운 외형에 강한 내면을 숨기는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위나라의 조조는 오나라의 손권과 손을 잡고 형주를 치려고 하였다. 유비는 관우를 보내 형주를 지키게 하면서 위나라의 번성을 치도록 하였다.
육구에 주둔한 오나라의 여몽은 관우가 마음을 놓도록 하기 위하여 병이 든 것처럼 속여 물러갔고, 무명의 육손이 그를 대신하였다. 육손은 육구에 부임하여 관우의 무용을 칭송하는 겸손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관우는 노련한 여몽은 경계하였지만 젊고 무명인 육손에 대해서는 애송이라 여기고, 형주 병력의 태반을 거두어 번성을 공격하는 데 투입하였다. 여몽은 형주의 병력이 취약한 틈을 타서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관우는 여몽과 육손의 소리장도 계책에 넘어간 것이다.
구당서(舊唐書) 이의부전(李義府傳)에 나오는 말로서, 당나라 고종 때 중서시랑을 지낸 이의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문장에 능하고 사무에 정통했다. 고종이 즉위한 뒤 무측천을 왕후로 세우려고 했을 때 이의부는 적극 찬동하여 황제의 신뢰를 얻었다.
그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미소를 지으며 선량한 얼굴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은 각박하고 간사하여 음험한 계책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의부의 웃음 속에는 항상 칼이 숨겨져 있다 故時人言 義府 笑中有刀.’고 말하였다. 이의부는 자기에게 거스르는 자는 문책하고, 자기에게 편드는 자를 모아 돈벌이를 했다. 그리하여 벼슬을 바라고 이익을 구해 그를 찾는 자가 늘어갔다. 고종이 이를 알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한번은 우연히 새 인사명부를 보고 승진 내정자를 불러 승진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돈을 받았다. 나중에 이 사실이 밝혀지자 그의 부자는 귀양을 떠났다. 고종의 대사면 령으로 그도 사면을 받았으나, 그는 도성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병사하였다. 도성의 관원들은 그 제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통감강목에도 당나라 현종 때의 간신 이임보(李林甫)라는 재상이 겉으로는 선을 장려하고 그럴듯한 말을 하나 은밀히 함정을 파고 지식인들을 음해한 것을 가리켜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는 사람(구밀복검;口蜜服劍)’ 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웃음을 띠고 있으나 내심은 음험하고 악랄한 사람을 가리켜 소중유도(笑中有刀), or 소리장도(笑裏蔵刀)라고 한다.
‘웃음 속에 칼이 있다.’는 이 말은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상냥하게 대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을 해칠 뜻을 품고 있음을 말하며, 병법에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여 안심시킨 뒤에 허를 찔러 공격하는 계책이다.
손자(孫子)는 ‘적의 태도가 겸허하면서 병을 증강하고 있는 것은 공격을 하려는 것이고, 갑자기 화평을 말하는 것은 다른 계략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외교의 장에서는 겉과 속이 다르다. 어떠한 사기꾼도 웃는 얼굴로 접근해 오고, 악질사채업자도 빌려 줄 때는 웃는 얼굴인 것이다. 상대방의 본심(本心)을 알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第11計 이대도강(李代桃僵)
자두나무 이(李). 대신할 대(代). 복숭아 도(桃). 쓰러질 강(僵)
복숭아나무 대신 자두나무가 죽었다.
-. 중국 고대와 중세의 악부시를 집대성한 악부시집에 실린 계명(鷄鳴)이라는 시에서,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벌레들에 갉아 먹혀 희생하는 것을 형제간의 우애에 빗대어 노래하였는데 여기서 유래되었다.
복숭아나무 우물가에서 자라고 桃生露井上,
자두나무 그 옆에서 자랐네 李樹生桃旁.
벌레가 복숭아나무 뿌리를 갉아먹으니 蟲來齧桃根,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죽었네 李樹代桃僵.
나무들도 대신 희생하거늘 樹木身相代,
형제는 또 서로를 잊는구나 兄弟還相忘.
여기서 이대도강이라는 성어가 생겼고, 병법에 응용되어 작은 것을 희생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는 전략을 뜻하게 되었다. 이른바 나의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취하는 전략이다.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은 제각기 장단점이 있으며,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는 어려운 법이다. 승부의 비결은 장단점을 서로 비교하여 단점으로써 장점을 이기는 데 달려 있다.
춘추시대 말기에 제(齊)나라의 대장군 전기는 왕자들과 마차 경주 내기를 하곤 하였다. 전기에게 의탁하고 있던 손빈은 마차를 끄는 말에 상중하의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기에게 이렇게 조언하였다. “장군의 하 등급 말을 상대의 상 등급 말과 겨루게 하고, 상 등급 말을 상대의 중 등급 말과 겨루게 하며, 중 등급 말을 상대의 하 등급 말과 겨루게 하십시오.”
여기서 손빈이 사용한 계책이 이대도강의 예이다. 하 등급 말이 상 등급 말과 겨루면 질 것이 뻔 하지만, 다른 두 번의 승리를 위하여 한 번 지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결국 전기는 한 번 졌지만 두 번을 이김으로써 왕자들로부터 천금을 딸 수 있었다.
여기서 유래한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넘어지다.’라는 뜻의 이대도강(李代桃僵)은 복숭아나무 옆에 자두나무를 심었더니 복숭아나무에 덤벼들었던 해충들이 자두나무에 덤벼들어, 자두나무가 죽였다는 것으로,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죽은 것이다. 즉, 작은 손해를 보는 대신 큰 승리를 거두는 전략이다.
★ 전쟁에서는 아군도 적군도 필사적이다. 아군도 희생이 없을 수가 없다. 때로는 아군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길 때도 있다. 도서(島嶼)의 전투에서 적이 우세한 경우, 섬 주민들을 (희생양으로) 그대로 둔 채, 적에게 내어주고는 보급로를 차단하고 굶주리게 해서 항복하게 하는 작전이 그런 것이다. 작은 것을 희생시켜 큰 것을 얻는 계략이다.



第12計 순수견양(順手牽羊)따를 순(順). 손 수(手). 끌어당길 견(牽). 양 양(羊)
기회에 순응(順應)하여 손에 잡히는 양을 끌고 간다.
-. ‘옛날 어느 양치기가 양떼를 몰고 가다가 좁은 길에 들어섰다. 그 때 나그네 하나가 지나가다가 잠시 그 속에 휩싸였다가 나타났는데, 그 손에 양 한 마리가 끈에 묶여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도 당당하였기에 양치기는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구체적으로는 ‘적이 드러낸 허점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이용하고, 아군에게 유리한 점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때를 놓치지 않고 쟁취한다 微隙在所必乘, 微利在所必得.’는 것이다.
이는 육도(六韜)에서 ‘잘 싸우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때가 되면 의심을 품지 않고 단행한다 善戰者, 牽利不失, 遇時不疑.’라고 말한 것과 통한다.
적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작은 승리를 거두고, 이러한 작은 승리가 쌓이면 큰 승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으로, 주로 적이 이동하면서 드러내는 허점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4세기 때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은 동진(東晉)을 정복하기 위하여 90만 대군을 징집하였다.
부견은 동생인 부융을 선봉대로 보내어 수양을 점령하였다. 부융은 동진의 병력이 적고 군량도 부족한 사실을 파악하고, 부견에게 빨리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다. 부견은 90만 대군이 모두 집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천 명의 기병만 이끌고 수양에 당도하였다.
동진의 장군 사석은 전진의 대군이 모두 집결하지 않은 틈을 타서 적의 선봉을 공격하여 격퇴시킴으로써 적의 예봉을 꺾었다. 이후 동진과 전진은 비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는데, 사석은 중과부적이므로 속전속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사석은 교만한 부견을 자극하여, 물을 사이에 두고 싸우기 불편하니 조금만 병력을 후퇴시키면 물을 건너가 싸우겠노라는 뜻을 전하였다. 부견은 동진의 군대가 물을 건널 때 기습하여 섬멸할 요량으로 군대를 후퇴시켰는데, 전진의 병사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동진에 패하여 후퇴하는 줄로만 알고 서로 먼저 도망치려 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동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수를 건너 공격하였고, 부견은 그 와중에 화살에 맞아 부상하여 겨우 10만 병사만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를 비수전투라고 하는데, 고대 전쟁사에서 열세인 병력으로 강대한 적을 상대하여 승리한 전례(戰例)의 하나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동진이 사용한 병법이 순수견양의 예로 인용된다.
★ 이 계는 적에게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작은 이득이라도 얻어내라는 것이다. 역으로 틈을 만들어 적을 유인하는 계도 있다.

병법(兵法) 36계(計)중, 승전계(勝戰計) : 이는 승리하는 계략(計略)이다. 第1計~ 第6計



第1計 만천과해(瞞天過海)속일 만(瞞), 하늘 천(天), 건너 갈 과(過), 바다 해(海)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간다.
-. 옛날 당나라 태종이 바다가 무서워 배 타는 것을 싫어하자, 장사귀 라는 사람이 거대한 배를 만든 후, 거기에 흙을 깔고 집을 짓고는 여기는 육지라며 태종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어 흥겹게 노는 사이에 바다를 건넜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제 1계부터 속임수다. 음모를 하려거든 음모가 아닌 것처럼 하라. 그래서 민의가 따를 수 있는 대의명분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대의명분의 바닥엔 정치적인 음모가 있겠지만 대중이 보기엔 음모는 보이지 않고 정의나 공의 편에 선 것처럼 하라는 것이다. 아니면 꾸준한 가운데 계략을 일상화 시켜서 경계심을 허물라.
일상 속에 숨겨진 계략은 탄로 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늘 보고 있던 것이라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의 비행기가 어느 날 갑자기 국경선 근방에 나타났다면 비상이 걸리겠지만, 오래 전부터 일상적으로 근방까지 왔다가 되돌아갔던 것이라면 “또 정찰 비행이겠지”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 놓고 어느 날 갑자기 공격하거나, 군대를 장사꾼으로 위장하여 적진으로 보내는 것과 같은 일상 속에 숨겨서 행하는 계략을 만천과해(瞞天過海)의 계라 한다.
太陽속에 太陰이 감추어져 있다는 말로서 가장 밝은 곳에 가장 어두운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것 으로 대의명분 뒤에 검은 계략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다.



第2計. 위위구조(囲魏救趙) 포위할 위(囲), 위나라 위(魏), 구할 구(救), 조나라 조(趙)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했다.
-. 옛날 위나라가 조나라의 수도를 공격했다. 조나라는 동맹국인 제나라(齊)에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제는 즉시 군대를 보냈으나 위나라와 조나라가 싸우는 전장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위나라의 수도를 공격했다. 이로써 위나라의 군사를 분산시켜 조나라를 구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일반적 전력이라면 다(多)가 이기고 소(少)가 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소가 다를 이길 수 있는가, 그것은 상대를 분산시켜 공격하는 것이다. 즉, 먹기 쉽게 잘라서 먹는 것이다.
막강한 적에게 정면으로 덤비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길 수 있게 해놓고 이기라는 것이다.
화력이 집중된 적의 정면을 공격하지 말고 취약한 적의 후방으로 우회하여 공격하거나, 적을 분산시켜 약하게 해놓고 공격하거나, 공개적으로 공격하지 말고 비밀리에 공격하라는 것이다.



第3計 차도살인(借刀殺人)빌릴 차(借). 칼 도(刀). 죽일 살(殺). 사람 인(人)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
-. 공자의 제자 자공은 노나라(魯)를 공격하려는 제나라(齊)의 계략을 알고, 제나라의 내부를 혼란시켜 오나라(吳)와 전쟁토록 만들었다. 즉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할 여력이 없게 만들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적의 내부를 혼란시켜 자멸시키거나, 적의 적을 이용하여 싸우게 하여 아군의 전력을 소모시키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적도 이런 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내부 단속을 잘해야 할 것이다.



第4計 이일대로(以逸待労) 으로서 이(以). 숨다 일(逸). 기다릴 대(待). 지칠 노(勞)
숨어서 지치기를 기다린다.
-. 손자의 군쟁(軍爭)편에도 언급되는데 ‘가까운 곳에서 먼 길을 오는 적을 기다리고, 편안한 자세로 적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며, 배불리 먹고 나서 적이 배고프기를 기다리니, 이것이 힘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以近待遠, 以佚待勞, 以飽待飢, 此治力者也.’라고 하였다.
이 처럼 이일대로는 적군보다 먼저 싸움터에 당도하여 충분히 휴식을 취함으로써 아군의 전력을 비축한 뒤에, 먼 길을 오느라 피로해진 적이 쉴 틈도 없이 공격하여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또는 상대의 전력이 아군보다 강할 때, 수비에 치중하는 한편으로 전열을 잘 가다듬어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린 뒤에 공격하는 전략이다.
후한시대 반란군이 협서성의 진창을 공격하였으나 정부군의 황보숭은 ‘진창이 쉽게 함락되는 곳이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반란군이 피로할 때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반란군이 지쳐서 스스로 철수하기 시작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반란군을 괴멸시켰다.
이처럼 이일대로(以佚待勞)는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지기를 기다린다.’라는 뜻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여 전력을 비축하고 나서 피로해진 적을 상대하는 전략이다.
佚일)은 逸(일)이라고도 쓴다.
★ 싸울 때 아군을 쉬게 하고 적군을 지치게 하면 그 만큼 유리하다. 아군의 전력이 약하더라도 적군이 지치면 승기가 보이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도 상대방 보다 먼저 도착해서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면 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강한 세력도 날이 길면 약해진다는 것에서 나온 것이다. 적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싸움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第5計 진화타겁(趁火打劫) 뒤쫓아 갈 진(趁). 불 화(火). 칠 타(打). 위협할 겁(劫)
불이 나서 위급할 때 치라.
-. 옛날 제나라(齊)는 한나라(韓)와 손을 잡고 연나라(燕)를 공략하려 하였으나, 옆 나라인 조나라(趙)와 초나라(楚)의 방해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때 한나라(韓)가 진나라(秦)와 위나라(魏)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당연히 동맹국인 제나라는 한나라를 구원하러 가야하는데도 가지 않았다.
한편 조나라와 초나라는 한나라가 멸망하면 다음엔 진나라와 위나라가 자기들을 공격할 것이라생각하고 참전하여 한나라(韓). 진나라(秦). 위나라(魏). 조나라(趙), 초나라(楚) 5국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그 틈을 타서 제나라는 재빨리 연나라를 공략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이것은 불난 틈을 타서 도둑질하라는 계이며, 적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 기회를 틈타서 벌 때처럼 공격하라는 것이다.



第6計 성동격서(声東撃西) 소리 성(声). 동녘 동(東). 칠 격(擊). 서쪽 서(西)
동쪽에서 소리 지르고 서쪽을 치라.
-. 한나라의 말기에 주준이 황건적을 포위하고, 성의 남서쪽에 흙 가마니를 쌓고 큰 북을 치며 공격하는 척하였다. 이에 황건적은 전군을 그 쪽으로 향하게 하자 그 틈을 타서 주준은 동북쪽으로 쳐들어갔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또한 통전(通典) 병전(兵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漢)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가 서로 싸우던 중, 위나라의 왕 표가 항우에게 항복하였다.
유방은 항우와 표가 양쪽에서 쳐들어오는 위험에 처하자 한신에게 적을 공격하게 하였다.
위나라 표는 백직을 대장으로 하여 황허강의 동쪽 포판에 진을 치고 한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하였다. 한신은 포판을 쳐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병사들에게 낮에는 큰 소리로 훈련하도록 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표시를 나타내게 하였다. 백직은 이러한 한나라 군대의 작전을 보고 어리석다며 비웃었다.
한신은 비밀리에 한나라 군대를 이끌고 하양에 다다라 뗏목으로 황하강을 건너서 매우 빠르게 전진하여 위나라의 후방 본거지인 안이를 점령하고 표를 사로잡았다.
이처럼 성동격서(聲東擊西)는 동쪽을 쳐들어가는 듯이 상대를 교란시켜 실제는 서쪽을 공격하는 병법으로, 한쪽을 공격할 듯 상대편을 속여서 방비가 허술한 다른 쪽을 쳐서 적을 무찌르는 병법이다.
★ 양동작전(陽動作戰)으로 오른쪽을 칠 것 같이 보이고 왼쪽을 치는 것으로 상대방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유도하고 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적이 속아 넘어가느냐라는 것으로, 적이 속지 않으면 공격하는 쪽이 당할 수가 있다. 반대로 아군도 적의 이런 작전에 말려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三十六計(36삼십육계) 兵法(병법) - 第36計 走爲上計 (주위상계)

*36計兵法[sānshiliujibīngfǎ]

第36計:走爲上計(주위상계) [zǒu wei shang ji]

안되면 튀어라!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달아나는 것이 제일 좋은수,즉

36計 중 최고라는 뜻이다.
반드시 훗날을 기약한다는 전제하에 일시적,작전상 후퇴도 필요하다.

走 [zǒu] 달릴주
爲,为 [wei] 할위
上 [shang] 위상
計,计 [ji] 꾀계

全師避敵.左次無咎,未失常也(전사피적.좌차무구,미실상야).

적이 강하고 우리가 약한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자발적으로 퇴각해서 기회를 엿본다음 적을 물리쳐야 한다(保全軍隊,避開强敵,不受損失).'물러남'을 '나아감'
으로 삼는 이러한 방법은 정상적인 법칙에 결코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這是以退爲進,幷不違背正常的用兵法則).


三十六計(36삼십육계) 兵法(병법) - 第35計 連環計 (연환계)

*36計兵法[sānshíliùjìbīngfǎ]

第35計:連環計(연환계) [lián huán jì]

사슬에 묶고 적을 친다.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주유가 조조의 군선을 불로 칠때 방통을 보내 조조의 군함을 모조리 쇠고리로 연결시킨 데서 유래하였다.
여러 계책을 연결시켜 적을 공격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적벽 대전에서 反間計,苦
肉計,連環計가 모두등장^^

連,连 [lián] 잇닿을연,련
環,环 [huán] 고리환
計,计 [jì] 꾀계

(카톡)將多兵衆,不可以敵,使其自累,以殺其勢.在師中吉,承天龍也(적다병중,불가이적,사기자루,이쇄기세.재사중길,승천룡야).

적의 병력이 강하면 무리하게 싸워서는 아니되고(將多兵衆,不可以敵),계책을 써서 적군끼리 견제하게 만들어 그들의 전투력을 약화시킨다(使其自累,以殺其勢).지휘관이 똑똑하여 지휘를 정확하게 하면,승리하는 것은 하늘이 돕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在師中吉,承天龍也).